미국이 반미ㆍ탈미 행보를 보이는 중남미 단속에 본격 나섰다.
7일 플로리다주 포트 로더데일에서 폐막한 미주기구(OAS) 연례총회에서는 미국과 미국의 그늘을 벗어나려는 중남미 국가들 간의 힘겨루기가 펼쳐졌다. 미국이 9ㆍ11 테러 이후 외교정책의 우선 순위를 아랍권에 둔 탓에 전통적으로 ‘뒷마당’으로 여겨지던 중남미에서 위상이 추락하자 30년 만에 자국 땅에서 열린 이번 OAS 총회를 통해 영향력 회복을 시도한 것이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6일 총회 연설에서 “자유의 물결이 결국은 쿠바를 휩쓸 것”이라며 중동에서 추진해온 ‘자유주의의 확산’을 중남미로도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개막 당일엔 콘돌리사 라이스 국무장관이 “미주지역 민주주의 이행 감시를 위한 실행 메커니즘을 정하자”며 OAS에 민주주의 이행 여부를 평가ㆍ감독하는 상설 기구를 설치할 것을 제안했다.
미국은 민주주의 감시 장치 도입 필요성의 근거로 볼리비아 에콰도르 등의 정정 불안을 들었지만, 반미 성향을 노골화하는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베네수엘라를 타깃으로 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미국이 이번 총회에서 선보인 중남미 대응 전략은 ‘어떠한 국가도 이웃국가에서 법치가 무너지거나 인권이 침해받을 경우 침묵해서는 안 된다’는 ‘비무관심(non-indifference) 원칙’으로 풀이되고 있다.
마이애미 헤럴드의 칼럼니스트 안드레스 오펜하이머는 미주지역에서 민주주의를 방어한다는 OAS가 ‘비무관심’ 원칙에 의거, 1962년 피델 카스트로의 공산 정권이 들어선 쿠바를 축출한 바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의 변화는 지금까지 들러리 집단에 불과했던 중남미 국가들이 반미 목소리를 내면서 대오에서 이탈한데 따른 위기의식에서 출발했다. 지난달 OAS 사무총장 선거에서 베네수엘라의 지지를 받은 호세 미겔 인술사 칠레 내무장관이 미국이 민 후보를 제치고 당선된 것은 미국의 위상 실추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에콰도르 볼리비아 등의 친미 정권들도 몰락했다.
미주대륙 34개국 외교안보 최고협의체인 OAS도 미국의 입김에 좌지우지되던 예전의 모습이 아니다. 미국의 ‘비무관심’ 제안은 베네수엘라는 물론, 브라질 멕시코 아르헨티나 등으로부터 “내정 간섭”이라는 강력한 비판에 부딪혔다.
인술사 사무총장은 “해당국가의 동의 없이 다른 국가에 대한 간섭을 금지한 OAS 헌장을 월권한 것”이라며 “미국의 제안에 대해 합의를 도출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로이터 통신은 이번 OAS 총회가 “부시 행정부와 중남미의 단층선을 확인한 회담”이라고 분석했다.
문향란기자 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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