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의 단일통화인 유로화가 잇단 EU헌법 부결로 호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유럽통합의 정치적 균열이 통화동맹의 균열까지 몰고 올 조짐이다.
로베르토 마로니 이탈리아 복지장관은 3일 “리라화를 재도입하는 문제를 국민투표에 붙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유로화의 앞날에 대한 회의감이 어느 때보다 높다.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테른은 1일 “한스 아이헬 독일 재무장관과 분데스방크(연방은행) 총재가 유럽통화동맹(EMU)의 실패 가능성과 향후 대책을 논의했다”며 “정부와 의회가 통화동맹을 떠날 권리를 입법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보도했다. 독일 정부는 급히 보도를 부인하며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최대 일간지인 빌트는 2일 “마르크화로 되돌아가는가”라는 분석기사를 통해 유로화를 탈퇴하는 게 좋다는 근거를 제시해 파문은 확산되는 양상이다.
이 신문이 유로화 탈퇴를 주장하는 1차적 이유는 유럽헌법의 부결 여파로 유로화 환율이 날개없는 추락을 하고 있다는 것. 달러 대비 유로화 가치는 네덜란드가 헌법 비준 국민투표를 부결시킨 1일 유로당 1.2158달러까지 떨어져 지난해 9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모건 스탠리는 조만간 유로화 가치가 달러와 1대 1이 되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유럽헌법 비준과정에서 드러난 EU 회원국의 경제적 격차에 따른 불평등 문제가 유로화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분석한다. 손해를 보면서 유로화를 고수할 이유가 없다는 논리가 EU 내 선진국에서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2002년 유로화가 도입되면서 EU는 각국의 통화장벽이 없어져 외환관련 비용이 대폭 줄고 강력한 단일통화로 회원국 평균 3%의 추가 경제성장이 기대된다는 장미빛 전망을 내놓았다.
그러나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EU 내 선진국은 물가만 대폭 올랐을 뿐 경기침체와 10%가 넘는 실업의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반면 경제적 불이익을 앞세워 자국 통화를 고수한 영국 스웨덴 덴마크는 오히려 경기가 훨씬 좋다.
경제상황이 각각인 EU 회원국들이 보조를 함께 맞추는 게 처음부터 불가능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유로화 사용을 위해서는 마스트리히트 조약의 경제수렴기준(물가ㆍ금리ㆍ재정ㆍ환율)을 충족해야 한다.
신규 가입국의 유로화 도입은 의무사항이다. 폴란드 헝가리 등 동유럽 국가들이 이 같은 기준 충족할 수 있을 지 불투명하다. 설령 가능하더라도 선진국들의 양보가 필요한 상황이다.
홍석우기자 museh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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