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야~ 하잇! 하이~~ 하이야.” 기합 소리 점점 커진다. “하잇!” 기합 소리 단호하게 끝난다.
현충일을 하루 앞둔 5일 낮 12시 서울 종로구 창성동 재단법인 세계총령(總領)무술진흥회 건물. 머리에 띠를 두른 청년 30여명이 하늘색 도포자루를 휘날리며 우렁찬 소리를 내지른다.
춤을 추듯 흔들거리는 몸 동작은 아스라한 옛날 우리 남정네들이 수련했을 수박도의 한 동작 같기도 하다. 한가운데 나이답지 않게 탄탄한 몸매에 불호령을 내리는 남자가 있으니 진흥회의 하정효(65) 이사장이다.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대광장에서 선보일 무술 시연을 최종 점검하고 있는 것이다.
하 이사장은 오후 1시 제자들과 함께 자신이 창시한 무술 ‘뫄한뭐루’ 시범과 순국선열을 위한 진혼무, K-2 소총 모조품을 들고 하는 입체 총검술 등 세 가지를 선보일 계획이다.
인자한 아저씨 같은 느낌을 주는 외모와는 달리 대화가 깊어질수록 그에게서는 기인의 체취가 물씬 풍겼다. 이 특이한 무술을 만든 계기부터가 그렇다.
“19살 때 전쟁통에 그토록 고생만 하시다 돌아가신 어머니 무덤 앞에서 전쟁의 비참함에 치를 떨며 ‘어떤 일이 있어도 자주 국방 무술을 만들어야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임진록과 난중일기를 늘 지니고 다녔지요.” 그는 “어머니가 차디찬 흙 속에 맨발로 누워 계시는데 자식이 신을 신고 다녀서야 되겠는가”라는 생각에서 신발을 벗어 던졌다고 한다.
조선대 법학과에 입학한 뒤 10년간 전국의 산천을 순례하기 시작했다. “맨발에 머리까지 길었으니 대학 시절부터 정신이상자로 오해받았습니다. 전국을 순례하며 10년을 보냈지요.
산 하나 넘어 마을에 가면 아이들에게 돌팔매질을 당하고… 나무를 헤치고 산을 오르면서 나무 가시를 치고, 나무에 매달리고, 바위에서 뛰어 내리고 하면서 그런 동작들이 무술로 쌓여갔습니다.”
이런 ‘공부’ 끝에 하씨는 1967년 11월 19일 충무공 서거 369주기에 당시 충무시의 충렬사를 찾아가 뫄한뭐루 선포식을 갖고 도장을 열었다. 3개월 만에 관원이 200명을 넘어섰고 71년에는 서울로 진출했다.
그는 이렇게 개척한 무술을 ‘마음과 정신을 하나로 모아 세상과 겨레를 살리는 길’이란 뜻으로 뫄한뭐루라고 했다고 한다. 아직 무도계의 검증이 끝났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매년 충북 충주 세계무술축제에 참가해 중국의 전통 무술인 우슈, 브라질의 카포에라, 인도네시아의 펜칵시라트 등과 자웅을 겨루고 있다.
“고정된 중심이 없고 그때그때 중심이 움직입니다. 전진과 후퇴, 공격과 방어의 구별이 없지요. 이순신 장군이 10여 척의 배로 10배나 많은 적함을 격퇴시킨 것처럼 학익진을 활용해 소수로 다수의 적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변화무쌍하게 대응하기 때문에 제대로 배우면 1대 8의 상황에서도 능히 상대를 제압할 수 있습니다.”
하 이사장은 “중국에는 무당, 아미, 소림파라는 3대 무술이 저력으로 버티고 있지요. 우리 군도 전통에 토대하고 충무공의 정신까지 농축된 군무(軍武)를 도입해 정신 무장과 전투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박석원 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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