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의 붉은 하늘
제임스 구스타브 스페스 지음ㆍ김보영 옮김 / 에코리브르 발행ㆍ1만8,000원
▲ 지구가 정말 이상하다
이기영 지음 / 살림 발행ㆍ9,800원
▲ 기후의 역습
모집 라티프 지음ㆍ이혜경 옮김 / 현암사 발행ㆍ8,500원
매너리즘만큼 경계해야 할 것도 없다. 인생이 권태롭다는 것은 문학적인 허영이나 수사에 지나지 않을 수 있지만, 삶의 결정적인 문제들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때로 매우 위험한 일이다. 양치는 소년의 경우처럼 위기가 일상이 될 때야말로 정말 진정한 위기인 것이다.
대중들이 환경문제를 느끼는 ‘역치’가 갈수록 높아지는 것도 그런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이맘 때 할리우드 영화 ‘투모로우’가 개봉돼 화제가 됐다.
이 영화는 급격한 지구 온난화로 남극, 북극의 빙상과 빙하가 녹고 바닷물이 차가워지면서 해류의 흐름이 바뀌어 결국 지구 전체가 빙하로 뒤덮이는 재앙의 날을 그리고 있다. 해일을 맞은 뒤 꽁꽁 얼어붙어버린 자유의 여신상과 뉴욕 풍경이 실감나고, 재난을 예고했던 잭 홀 박사의 아들을 구하기 위한 분투가 감동적이라는 기억이 생생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빙하시대가 이르면 수십 년 안에 현실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섬뜩하게 느낀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영화는 수많은 학자들의 경고를 그대로 스크린에 옮긴 것이나 마찬가지이지만, 관객은 컴퓨터그래픽의 화려한 마술에 감동하고 말았을 게 틀림이 없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 영화가 그려낸 세상은 영화 속에서 존재할 뿐이다. 설혹 그 엄청난 메시지를 알았다 하더라도 그것으로 혈압이 높아질 정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미국 매사추세츠주 우즈홀해양학연구소의 과학자들은 갑작스런 기후 이변의 결과 중 가장 쉽게 예측할 수 있는 일이 멕시코 만류와 같은 해류의 차단이라고 믿고 있다.
‘투모로우’가 가정하는 재앙과 비슷한 상황이다. 과학자들은 화석을 조사해보면 과거 멕시코 만류의 흐름이 갑작스럽게 끊기면서 북대서양 지역 전체에 극심한 한파가 몰려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과학자들이 컴퓨터로 가상실험을 해본 결과, 멕시코 만류가 차단되면 미국 동부지역은 지금까지 기온이 가장 낮았던 겨울보다 2배는 더 추워질 것이라고 한다.
지구 온난화 등으로 북쪽의 빙하가 녹아 북대서양으로 방출되는 담수의 양이 크게 증가하고 있다. 바닷물의 담수화는 “현대의 가장 거대하고 극적인 해양 변화”라고 우즈홀연구소 과학자들은 말한다.
담수화로 멕시코 만류 흐름이 차단되는 과정을 설명하기는 복잡하지만 기본적으로 담수는 멕시코 만류의 열 방출을 차단하고 북쪽으로 흘러가는 따뜻한 물줄기를 끊어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된 열 번 중 아홉 번이 1990년 이후였을 만큼 기후가 변하고 있다. 온난화가 계속된다면 향후 50년 내에 지구 동식물의 3분의 1 이상이 멸종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경고는 수도 없이 나왔다.
남벌에 따른 삼림 파괴, 비옥한 땅의 사막화, 물 부족 등으로 지구가 황폐해지고, 살기가 어려워질수록 지역갈등이나 전쟁 등 분쟁 상황이 더 커진다. 지난해 공개된 미 국무부의 비밀보고서는 2010년부터 2020년 사이에 환경 변화에 따른 지역 갈등이 폭증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이런 내용을 귀에 익도록 들었고, 다 아는 것처럼 말한다는 점이다. 위기 상황에 너무 둔감해졌고, 그래서 지구를 구하는 대열에 적극 나서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지미 카터와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환경 자문위원, 유엔개발계획 사무총장을 지냈고 현재 미국 예일대 산림ㆍ환경학부 학장인 제임스 쿠스타브 스페스가 쓴 ‘아침의 붉은 하늘’은 이런 점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스페스 교수는 자신을 비롯해 많은 학자들이 20년 전부터 거듭 경고했는데도 불구하고, 오존층 파괴를 줄이기 위한 이산화탄소 배출량 규제를 제외하고는 이제까지 각국 정부가 한 일이 없다고 비판한다. 이기영 호서대 자연과학부 교수가 쓴 ‘지구가 정말 이상하다’, 독일 키일대 교수인 모집 라티프의 ‘기후의 역습’도 비슷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그렇다고 지구가 가망 없는 종말의 길에 접어든 것은 아니다. 저자들은 한시 바삐 지구 환경을 개선하려는 좀더 강력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무기력한 국제환경체제로는 환경 개선을 기대할 수 없다’ ‘세계무역기구 같은 세계환경기구를 창설해 각국이 엄격한 규제를 포함한 조약 체결에 나서야 한다’ ‘환경문제를 정부와 정치권에 일임해서는 안 되며 시민사회와 환경사회단체, 기업, 정부가 진정한 환경 글로벌 거버넌스를 만들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속가능한 미래를 기약 받기 위해 개인들이 참여하고 실천할 기회는 아직 얼마든지 열려 있다는 것이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