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비평의 개척자 팔봉(八峰) 김기진(金基鎭ㆍ1903~1985) 선생의 유지를 기려 한국일보사가 제정한 팔봉비평문학상 시상식이 25일 오후 한국일보사 12층 송현클럽에서 열렸다.
시상식에서 평론집 ‘문학의 윤리’로 제16회 수상자로 뽑힌 서영채(徐榮彩ㆍ44) 한신대 교수에게 상패와 상금, 팔봉 선생의 유족들이 마련한 순금 기념메달 등이 수여됐다.
심사위원단(유종호 김윤식 김병익 김주연)은 “깊은 시각과 유연한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문학평론의 살아있는 힘과 맛을 유감없이 표현해준 수작”이라며 수상작 선정 이유를 밝혔다.
서 교수는 “대학 2학년 첫 수업 과제가 ‘팔봉론’이었다”는 말로 수상소감의 운을 뗀 뒤 책에서 밝힌, 문학이 서야 할 자리, 문학의 윤리가 서야 할 자리에 대한 소신을 담담히 피력했다. 수상자의 은사인 김윤식(서울대) 명예교수가 축사를, 김주연(숙명여대) 교수가 심사경위를 밝혔다.
행사에는 팔봉 선생의 장녀 김복희 여사와 막내 김용한씨, 심사위원인 문학평론가 김병익씨, 소설가 황석영 김훈 임철우 최수철 김형경 서하진 김영하 김경욱 윤성희 이신조 김종광씨, 최두석 차창룡 강정 시인, 문학평론가 홍정선 이광호 손정수씨 등이 참석했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 팔봉비평문학상 서영채 교수 수상소감
문학의 윤리라는 제목의 책을 낸 후, 주변으로부터 고리타분하다, 딱딱하다, 너무 엄숙하다는 등의 말을 들었습니다. 그것은 순전히 제목에 붙은 윤리라는 단어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제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문학이 어떻게 윤리적 덕목에 기여할 수 있는가 하는 등의 문제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의 것이었지요. 문학이라는 윤리적 행위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지금의 우리는 최소한 두 개의 윤리적 자장 속에서 사는 듯합니다. 하나는 올바름의 윤리입니다. 이것은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담을 쌓고 문을 닫아거는 일입니다.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지켜야 할 올바름의 영역이다. 정의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은 사람을 전투적으로 만듭니다. 또 하나는 차이를 존중하는 공존의 윤리입니다. 이것은 문을 열고 외부와의 소통을 시도하는 일입니다.
이들은 말합니다. 문을 열어놓았으니 들어와라, 단 우리의 말과 풍습을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너희의 차이도 존중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의연히 내부와 외부를 가르는 담장은 남아 있고, 또 시선과 발언의 주체는 어김없이 내부자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올바른 삶을, 그것도 전투적으로 추구하는 것과 문학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구태여 선택해야 한다면 문학은 그 반대편에 있어야 합니다. 또 안과 밖의 나뉨이 있는 곳에도 문학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내부와 외부가 겹쳐지는 곳이, 안과 밖을 가르는 경계 위나 담장에 뚫어진 구멍 속 같은 곳이 문학의 자리일 것입니다.
진정으로 윤리적인 것은 내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생각과 관습과 말의 소유자들과 함께 하는 것, 에일리언들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런 에일리언의 시선으로 우리 삶을 바라보는 일, 그것이 문학의 일이자 힘이 아닌가 합니다. 윤리란 나누고 가르고 순서를 만드는 일입니다. 그런 한에서, 문학은 윤리의 반대말입니다. 우리 삶을 윤리화하는 힘에 대한 저항을 통해서만, 자신을 탈윤리화함으로써만 문학은 자신의 윤리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문학이 우리 시대의 정신을 표상하는 대표적이고 특권적 매체로서의 지위를 상실했다는 사실은 이제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문화의 영역에서도 민주주의의 시대가 왔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문학이 아니라 삶인 것과 마찬가지로, 문학에게 중요한 것도 권위나 지위가 아니라 우리의 삶이 요청하는 문학의 필요성일 것입니다. 문학에 대한 시대의 새로운 요청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지금의 우리에게 중요한 일이 아닐까 합니다.
동시대의 문학작품과 맥락을 읽고 독후감을 쓰면서 제가 주로 생각해왔던 것들이 이런 점들입니다. 팔봉비평문학상의 수상자로 선정됨으로써 제게 돌아올 영예의 대부분은 우리 시대 글쟁이들의 것입니다. 그들의 글이 제 생각을 촉발시키고 쓰게 만들었습니다. 문학의 그 멋진 스승들께 감사합니다.
한신대 문예창작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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