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時調)는 시이고 음악이다. 그런데 국어 시간에 시로 배운 건 알겠는데, 장단 치며 부르는 노래로는 영 낯선 편이다.
시조는 가곡, 가사와 더불어 정가(正歌)로 분류되는 우리나라 전통 성악곡이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판소리나 민요와 달리 정가는 절제미가 특징이며 느리고 점잖다. 그래서 옛 선비들이 수양 삼아 많이 불렀다.
가곡과 시조는 모두 시조 시를 노래하지만, 형식과 맛은 서로 다르다. 5장 형식에 조촐한 관현악 반주를 갖춰야 하는 가곡은 깐깐하고 고급스런 귀족적 노래다. 반면 시조는 장구 하나 혹은 무릎장단이면 족해서 좀더 소박하고 편안하게 다가오는 서민적 노래다. 판소리나 민요가 질뚝배기라면 가곡은 고려청자, 시조는 조선백자쯤 된다.
시조는 요즘 세상과는 참 멀어졌다. 하기는 정신없이 빠르게만 치닫는 세상에 누가 이처럼 느리고 태평스러운 노래를 들을까 싶다. 그런 거리감을 좁히고 싶어서 국립국악원 정악단원 문현(47)씨가 최초의 창작시조 음반 ‘시조, 도시를 걷다’(CD, 서울음반)를 냈다. 시조를 오늘의 감성을 담는 그릇으로 다시 빚어보려는 의욕이 느껴지는 음반이다.
속지의 해설을 빌자면 ‘번화한 네온사인과 전자음향, 혼돈의 도시 한복판에서 뚜벅거리며 걷는 시조를 만나는 독특한 음악여행’이다. 해설지 사진 속에서 문씨는 두루마기 차림으로 번잡하고 현란한 도심 밤거리를 걷고 있다.
모두 10곡의 노래가 들어있다. 창법이나 느짓하고 점잖은 맛은 시조 그대로인데, 풍기는 감성은 젊고 도회적이고 현대적이어서 흥미롭다. “구태의연한 접근을 하기 싫어서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를 했죠. 시조는 고리타분한 음악이라는 인상을 깨고 싶어서요. 전통적인 원형을 고집하는 분들은 이게 무슨 시조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첫 세 곡은 기타와 대금이 반주하는 부드러운 가요 풍(류형선 작곡 ‘아침안개’), 피아노 반주와 속삭이는 듯한 창법의 재즈 풍(‘달시조’), 피아노 반주의 편안한 뉴에이지 풍(‘주인이 술 부으니’)이다. 듣기에 부담 없고 따라 부르기도 어렵지 않아보이는 이 노래들은 “대중성을 지향하여 히트치기를 바라는 곡”이란다.
실험적인 음악도 들어있다. 국악 솔리스트 그룹 상상과 함께 만든 즉흥음악(‘시조, 도시를 걷다’ ‘도시 속의 시조’), SF적인 전자음향과 시조 창의 컴퓨터음악(황성호 작곡 ‘원효’ ‘심상가곡’), 서양 소프라노와 함께 부르는 전위적 색채의 현대음악(마쯔다이라 요리아끼 작곡 ‘지구공전’)이다. 다 듣고나니 “시조가 이렇게 다양하고 참신한 모습으로 다시 태어날 수도 있구나!” 싶다.
문씨는 이력이 좀 별나다. 공대 나와서 2년간 페인트회사 연구원으로 있다가 때려치우고 국악과에 편입해서 가곡을 전공했다. 대학시절 탈춤을 통해 우리음악에 빠졌고, 이양교 명인을 만나 가곡ㆍ가사ㆍ시조를 배우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국립국악원에서 연구와 공연기획 일을 하다가 노래에 미쳐 다시 정악단에 들어가 가객으로 활동 중이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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