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해경경비정 6척과 일본 순시정 7척이 1일 일본 EEZ 침범 혐의를 받고 있는 한국 어선(502 신풍호)을 서로 끌고가기 위해 공해상에서 하루종일 대치했다.
울산 울주군 간절곶 앞 16마일(28.8㎞) 해상은 한국 EEZ로 한일 간 EEZ 경계선에서 한국쪽으로 18마일(32.4㎞) 들어와 있는 지점. 이 곳은 한국 영해(해안 12마일)가 아닌 공해상으로 어느 나라 국적의 선박도 자유롭게 다닐 수 있는 곳이다.
한일 경비정 출동ㆍ대치 22시간을 넘긴 2일 자정을 넘긴 시각까지 한국 해경경비정과 일본 순시정은 문제의 신풍호를 가운데 두고 해상에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처음엔 신풍호의 좌우를 한국 경비정과 일본 순시정 각 1척씩이 밧줄로 묶어 3척이 계류돼 있었으나 곧 이어 양쪽에 각 2척의 경비정과 순시정이 합세, 모두 7척이 일렬로 계류됐다.
신풍호의 좌현에는 울산해경 소속 250톤급 251함과 부산해경 소속 1,500톤급 1503호, 울산해경 250톤급 307함이 여러 개의 밧줄로 차례로 묶여 있었으며, 신풍호 우현에는 150톤급 일본 순시정 3척이 나란히 계류한 상태로 배 7척이 일렬로 늘어섰다.
주변에는 울산해경 소속 300톤급 300함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이들 선박 주변을 돌며 경계를 섰다.
오후에 접어들면서 현장에 급파된 경비정 수가 한국 6척, 일본 7척으로 각각 늘어 나는 등 양측 해양경찰이 위력시위 양상을 보였다.
하지만 이들 선박이 대치하고 있는 해역은 높이 1.5~2㎙의 파도가 이는 등 기상이 악화하고 있으며, 많은 선박이 해상에서 계류될 경우 4~5㎙의 파고 속에서 운항하는 것보다도 안전성 면에서는 더 위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이날 오후 9시께 양측의 합의로 1척씩 계류키로 해 원래의 ‘3척 계류’ 모양으로 자정을 넘기고 있다.
EEZ 침범ㆍ폭행ㆍ도주
배의 키를 잡고 항해를 맡았던 황모(39)씨에 따르면 31일 밤 12시 가까이 갑자기 일본 순시정이 환한 불빛을 비추며 나타나 “정지하라”고 방송했다.
신풍호가 울산항 쪽으로 선수를 돌려 항해를 계속하자 순시정이 쫓아와 신풍호 옆에 붙이고는 일본 요원 2명이 올라타며 “배를 세우라”고 요구했다.
당시 배에는 모두 10명의 선원 가운데 황씨만 깨어 있었다. 선장 정씨는 선장실에서, 나머지 8명은 선실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일본 순시정 요원들은 신풍호에 올라타면서 이를 저지하는 황씨를 봉과 헬멧 등으로 5~10분간 마구 때렸다. 황씨가 비상벨을 눌렀고, 선실에서 자고 있던 선원 8명과 선장 정씨가 갑판으로 올라온 뒤에야 구타가 멈췄다.
선원들과 일본 요원들이 실랑이를 벌이던 중 선장 정씨는 인근 선박에 “해경에 신고해달라”고 무전으로 요청했고, 1시간여 만에 우리 해경경비함이 현장에 도착했다.
울산의 한 병원으로 후송돼 치료를 받고 있는 황씨는 “잠시 졸음에 빠진 사이 일본 EEZ로 들어가게 됐는지 모르겠으나 무슨 중죄를 지었다고 일본 요원들이 우리 선원에게 그다지도 무자비한 폭행을 가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
한일 관계자 선상 협상10시 30분께 현장에 출동한 양국 관계자들이 협상을 벌였으나 주장이 맞서 결렬됐다.
이어 오후 2시께 김승수 울산해경서장이 현장에 도착, 신풍호 선장 정씨를 합석시킨 가운데 일본 해상구난과장과 1,500톤급 우리 해경경비함에서 일본 EEZ에서의 조업 여부에 대한 사실 확인 등 함상조사와 함께 문제해결을 위한 협상을 재개했으나 이날 자정까지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이날 오후 일본의 농림수산성 장관이 상황보고를 받고 “한국 어선들이 일본 EEZ를 다시는 침범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며 신풍호의 압송을 지시하면서 일본 측의 태도가 더 완고해진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측은 또 “한국 어선이 일본 순시정 요원을 2명이나 태우고 정지명령도 무시한 채 한국 EEZ로 도주한 것은 매우 큰 범죄”라며 “한국 어선을 일본으로 끌고 가 선원들을 조사하겠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김승수 울산해경 서장 등은 “우리 EEZ에서 우리가 어선을 검거한 만큼 설혹 이들에게 죄가 있더라도 한국에서 수사를 해야 한다”며 한국으로의 견인을 강하게 요구했다.
김 서장 등은 또 “최근 한ㆍ일이 선린우호 차원에서 과잉대응을 자제하자고 약속해 놓고 한국 선원을 마구 때리고 선실까지 부순 것은 너무한 것 아니냐”고 따지고, “우리 어민과 재산보호 차원에서도 일본의 어선 나포를 그냥 두고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울산=목상균 기자 sgmok@hk.co.kr
■ 국제법상 형사관할권 어디에 있나
일본 EEZ에서 불법 조업하다 한국 EEZ로 넘어올 경우 형사관할권은 어느 나라에 있을까.
일본은 신풍호가 자국 EEZ에서 불법 어로행위를 하고 자국 보안관 2명을 태운 채 도주했다며 신풍호를 넘겨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불법행위 증거도 없고, 있더라도 신풍호의 현 위치가 한국 EEZ인 만큼 형사관할권을 넘겨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신풍호의 선주가 한국인이기 때문에 속인주의에 따라 범법행위가 있다면 한국이 처벌권을 행사하겠다는 것이다.
국제해양협약에 따르면 한일 양국은 자국 EEZ에서 상대국 어선이 불법조업을 했을 경우 지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도주시 추적권도 행사한다. 이 추적권은 문제의 선박이 상대국 영해로 들어갔을 경우 종료된다. 따라서 일본 순시선의 신풍호 추적은 적법한 것이다.
일본은 현재 신풍호의 현 위치가 한국 영해가 아니어서 자국이 지도권을 행사할 수 있으며, 따라서 자국으로 견인해 조사한 뒤 처벌하겠다는 주장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일본측 주장이 법적인 근거를 두고 있지만 신풍호의 불법행위가 입증되지 않은 점, 현 대치상황이 우리 EEZ에서 발생한 점 등에 터잡은 우리측 주장도 적법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형사관할권 경합에 대한 국제법의 원칙이 없고, 유사한 전례도 없어 정치적으로 타협될 수 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이영섭 기자 younglee@hk.co.kr
■ 韓日 대치 이면엔 '장어어장' 갈등
한일 경비정의 해상 대치는 표면적으로는 일본의 EEZ 침범 여부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장어 어장을 둘러싼 한국과 일본 양국의 신경전이 표출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해양수산부와 통영의 통발 수협 등에 따르면 장어 황금어장은 당초 제주도에서 흑산도에 이르는 해역이었으나 한중어업협정에 따라 중국에 어장을 내주게 된 뒤 장어 통발어선이 대거 부산 동쪽 어장으로 몰려들고 있다.
하지만 2001년 신 한일어업협정 이후 일본의 EEZ이 획정되며 동쪽 어장도 마음대로 조업할 수 없게 됐다. 특히 부산과 울산의 경우 일본 EEZ와 거리가 13마일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데다 제한된 어장을 놓고 120여척의 국내 장어 통발어선이 경쟁을 벌이다 보니 간혹 일본 EEZ에 접근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일본의 순시가 강화됐으며 올 들어서 일본 EEZ를 침범해 나포된 국내 어선 12척 가운데 장어 통발어선이 7척에 달할 정도다. 지난해 5월24일에도 통영선적 장어 통발어선 풍운호가 일본 EEZ를 침범하자 일본 순시선이 고무탄 등을 발사하면 추격전을 벌이기도 했다.
독도 분쟁과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사태 이후 빚어진 한일 간 긴장관계 이후 일본의 대응도 심해졌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통영 통발수협 관계자는 “조업을 하지 않을 경우 일본 EEZ에선 맘대로 항해는 할 수 있으나 일본은 항해만 해도 무조건 나포한 뒤 과거 사실까지 뒤져 한국 어민들을 구속한다”고 말했다.
황양준 기자 naige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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