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동구 옥수동 매봉산. 높이 170m 정도로 야트막한 이 산의 정상을 올라가면 남산과 한강이 한눈에 들어온다. 그러나 산정에서 시원한 눈맛만 느끼고 간다면 산행이 주는 즐거움의 절반쯤밖에 누리지 못한 것이다. 정상 인근 약수터로 향하는 등산로를 따라 형형색색의 야생화들이 가지런히 가꾸어져 있기 때문이다. 풀꽃 하나하나마다 정성스럽게 플라스틱 이름표가 달려 있고 꽃밭과 등산로 사이에는 아카시아 나무들이 아늑한 울타리를 이루고 있다.
400여 종의 꽃과 들풀이 자라는 이 꽃밭을 가꾼 이는 옥수동에서 한의원을 운영하는 안억붕(58)씨. 안씨는 매봉산 등산로의 꽃밭을 가꾼 공로로 4일 서울시가 수여하는 서울사랑시민상 푸른마을 부문 본상을 받는다.
안씨가 야생화 꽃밭을 가꾸기 시작한 때는 2001년 봄. 아파트 화단만 가꾸기보다는 이왕이면 사람들이 많이 찾는 등산로 주변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후 새벽 4시부터 산을 찾아 매일 4~5시간 동안 꽃밭을 가꿨고 주말에도 도매시장에서 꽃을 사 하루종일 꽃밭에 꽂을 심었다. 장미나 패랭이꽃, 붓꽃 등 관상용 꽃도 심었고 매봉산에 자생하던 야생화도 옮겨 심었다. 모종삽과 비닐봉지에 담은 풀꽃을 들고 새벽이면 홀로 산을 찾는 안씨를 처음엔 사람들이 이상하게 쳐다보기도 했지만 꽃밭이 완성되자 환호성을 터뜨렸다.
지금은 자연학습장이 된 이 등산로를 주말이면 일부러 찾는 단골 등산객도 생겼을 정도다. 안씨는 꽃밭 가꾸기에 그치지 않고 2001년부터는 여름방학 때마다 주민, 유치원생, 초ㆍ중등학생 등을 상대로 야생화에 관한 강의도 하고 있다. 성동구에서는 야생화 강의용 소형책자를 지원해 주기도 했고 중구에서는 연장을 보관할 수 있는 통나무 창고를 만들어 주기도 했다.
안씨의 꽃 사랑은 중고교 시절 온실반에서 특별활동을 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주말마다 전국의 산을 찾던 30대 때는 야생화에 애착을 갖게 됐다. 시골 농부들조차 들판에 널려 있는 야생화의 이름을 모른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부터였다. 이후 혼자서 식물도감을 찾아가며 야생화를 가꾸고 주변 사람들에게 야생화의 아름다움을 알려주기 시작했다.
“왜 야생화에 애착을 갖느냐”는 물음에 안씨는 “화려하게 드러나는 것들과 그렇지 않은 것이 어울려 살아야 하는 것이 세상 이치”라며 “희귀한 야생화는 알아도 정작 우리가 매일 밟고 다니는 야생화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관심을 쏟지 않는 점이 안타깝다”고 설명했다.
그는 “취미로 한 일로 상까지 받게 돼 겸연쩍다. 꽃밭은 누구의 소유가 아니라 보는 사람 것”이라며 꽃처럼 웃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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