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북한의 핵보유 선언 이후 북핵 문제가 다시 한번 국제사회의 초미의 관심이 되고 있다. 이미 6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거나 핵실험이 임박했다는 추정에 더하여 각종 위기설이 난무하더니, 이제는 더 이상 좌시하지 말고 한미 공조를 기반으로 북한에 대한 최후 승부수를 띄워야 한다는 강경론까지 개진되고 있다.
이러한 강경론의 기저에는 북한에게 핵무장 해제에 상응하는 반대급부를 주는 유화적 해결 방식은 이미 효용이 없음이 증명되었으므로 직접적인 압박을 가하여 핵무기 개발 시도를 포기하게끔 해야 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북핵 문제가 본격화된 지난 1994년 이후 미국은 북한에 대하여 경제제재와 국제여론을 통해 지속적 압박을 가해 보았다. 그러나 압박의 결과는 핵무기 보유 선언과 그로 인한 한반도 긴장의 고조일 뿐이었다. 핵무기 없다던 북한이 핵무기 있는 북한으로 바뀌었다면 결과적으로 부시행정부의 북핵 정책은 일단 실패하였다고 결론 내릴 수밖에 없다.
-압박 클수록 北은 필사적
북한에 대한 압박이 통하지 않는 일차적인 이유는 북한 핵 문제의 발생 원인에서 찾아 볼 수 있다. 북한이 핵 개발을 시도한 것은 사회주의권 붕괴에 따른 국제적 고립과 인권문제 등에서 비롯된 국제사회의 직ㆍ간접적인 압력을 회피하기 위한 체제 방어의 수단이었다. 따라서 국제사회의 압박이 거세지면 질수록 북한의 핵개발 의지는 더욱 필사적이 될 수밖에 없다.
북한에 대한 압박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핵무기확산금지조약(NPT)의 구조적 문제점에서 비롯된다. 2차 대전 이후 핵무기 개발의 도미노 현상을 막기 위하여 채택된 NPT는 핵무기 확산을 제어하는 규범으로서 일정 수준 효과를 발휘한 반면 조약으로서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이중 기준의 적용’이다.
이미 핵무기를 보유한 나라들에게는 NPT가 적용되지 않고 후발 주자들에게만 일방적인 의무를 부여한다는 점이다. 강대국 중심의 기존 질서를 행위준칙으로 형성해 온 근대국제법의 현실을 감안하더라도, 이스라엘이나 파키스탄까지 핵무기를 개발하고 NPT 체제 밖에 있는 상황을 용인하면서 북한에 대한 일방적 압박이 성공하기는 힘든 상태이다.
뿐만 아니라 NPT 제10조는 회원국이 자국의 ‘중대한 국익’이 침해된다고 판단하는 경우 NPT에서 탈퇴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이 ‘중대한 국익’이 무엇이냐에 대한 판단은 동 조항에서 회원국 자신의 ‘주권사항’으로 선언하고 있다. 조약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가입ㆍ탈퇴 조건을 주권 사항으로 명문화하여 강조한 것은, 이중 기준 적용의 문제점을 보완하여 좀더 많은 국가를 NPT 체제 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의도로 판단된다.
결국 NPT가 스스로 설정한 굴레에 조약의 효과적 이행이 제약되고 있으며 북한도 NPT 체제의 이러한 모순을 역이용 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와 더불어 미국도 구 소련과 체결한 탄도요격미사일(ABM) 조약을 2001년 일방적으로 폐기하는 등 대량 살상 무기 감축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
압박은 국제사회의 규범에 합치되고 구성원 전반으로부터 설득력을 얻을 때만이 성공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미국이 주도하여 북한에 대한 강한 압박만을 지속하기에는, 미국 스스로가 버린 명분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
-강경책은 강경대응 불러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것은 절대 묵과할 수 없는 문제이다. 하지만 아직은 승부수를 걸 때가 아니다. 섣부른 강경책은 또 다른 강경 대응을 불러온다.
우선은 한반도 비핵화의 조건을 면밀히 검토하고 조성해야 한다. 곰팡이의 근본적 제거는 곰팡이가 생존할 수 없는 환경을 만들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는 원리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모색하고 끈기 있게 주변국들과 유기적 협조의 틀을 유지ㆍ발전시키는 것이 현재의 급선무이다.
이용중 동국대 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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