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도문은 문학, 영화 등을 통해 비(非)기독교신자에게도 친숙해진 기도문이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허례나 과시욕을 멀리하도록 직접 가르친 간결하고 함축적인 형식이다.
주기도문의 새 번역안이 발표되자, 여성 신자들이 그 안의 ‘아버지’ 호칭을 바꾸라고 주장해 눈길을 끌고 있다.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의 ‘아버지’가 양성평등으로 향하는 현대의 시대적 흐름을 반영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남녀 간 기계적 평등을 외치는 편협한 주장으로만 여길 것은 아닌 듯하다. 영문 성경을 보면 이 부분들은 father’s(아버지의)가 아니라 thy(그대의, 당신의)로 되어 있다.
전원 남성으로 구성된 번역 팀은 우리 정서상 ‘아버지’가 더 맞는다는 주장을 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여성들은 “하나님은 성을 초월한 존재이므로 ‘thy’를 원래대로 ‘당신의’로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들은 또 ‘하나님 아버지’라는 반복적 외기를 통해 하나님 형상 자체가 아버지, 남성이 교회 우두머리인 것으로 이념화 했다고 지적한다.
△ 여성 신자들의 주장은 왜곡 번역된 부분을 바로 잡자는 것이지만, 언어는 일정한 시대의식의 흐름을 반영하게 된다. 영어에서는 우체국 집배원의 표현이 메일맨에서 메일 캐리어로 중성화했다.
소방관은 파이어맨에서 파이어 파이터로, 경찰관도 폴리스맨에서 폴리스 퍼슨으로 각각 바뀌고 있다. 우리가 지금 “이 양반이?”하면 싸움하자는 뜻으로 받아들이지만, 본디 ‘이 양반…’은 조선 후기 계급사회가 흔들리면서 우월적 의미를 잃고 도전적 성격마저 띠게 된 것이다.
△ 통계청이 발표한 2004년 생활시간조사를 보면, 한국 남성은 집에서 여성의 상전 노릇을 하고 있다. 맞벌이 부부지만 여성의 집안일 하는 시간은 3시간 40분, 남성은 7분의 1에 해당하는 34분이다. 시대와 사회가 변해도 별로 나아지리라는 기약도 없는 것이, 남성의 가사노동 시간은 5년 전에 비해 고작 4분이 늘었다.
기독교는 한국인의 근대적 삶에 많은 민주적 변화를 주어 왔다. 성경의 ‘아버지의’를 원래대로 ‘당신의’로 바꾸면 가부장적ㆍ시대착오적 행태가 좀더 고쳐지지 않을지.
박래부 수석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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