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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사자 유해발굴 현장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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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사자 유해발굴 현장을 가다

입력
2005.05.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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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음이 우거진 강원도 횡성군 우천면 오원리의 이름 없는 야산. 한 평 남짓한 개인 참호를 삽으로 파던 장병이 탄피와 신발 밑창을 발견하고 숨을 죽인다.

유해발굴단 조끼를 입은 장병이 붓과 가위를 들고 참호로 내려간다. 한참 붓질을 하니 어느 부위인지 모를 인골이 하나 드러난다. 옆에 있던 한 병사가 실수로 건드리자 고참 병장이 엄하게 꾸짖으며 주의를 준다. 뼈가 대부분 드러나자 땀을 훔치던 장병들은 잠시 환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엄숙해진다.

6ㆍ25의 총성이 멈춘 지 52년. 참호 속에 웅크린 채 묻혀있던 이름 모를 국군은 이제서야 조국의 하늘을 바라본다.

5년째 진행되고 있는 전사자 유해 발굴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횡성 지역 발굴작업을 맡고 있는 모사단 장상기 중령은 “하루 100여명이 작업하고 있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 제보자의 증언이 정확하지 않고 국토개발에 따른 지형의 변화가 심해 발굴 작업에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초기에는 치열한 격전지 위주로 발굴 작업을 했는데 한 구의 유해도 찾지 못해 허탈했다고 한다. 지금은 주로 국군 전사자를 묻어주었다는 마을 사람이나 당시 전투를 벌인 참전군인의 증언을 취합해 발굴작업을 하고 있다.

제보자의 증언을 토대로 현장에 도착하면 먼저 지뢰탐지기로 불발된 수류탄이나 금속 유품이 있는지 조심스럽게 탐색한다. 그리고 삽으로 땅을 파내려가다 유해의 일부분이나 유품이 발견되면 전문교육을 받은 유해발굴병이 정성들여 수습을 한 후 하얀 한지로 곱게 싸 관에 안치한다. 관에 태극기를 덮고는 현장에서 한 잔 술로 간단한 위령제를 지낸다.

유해는 지역 부대에 설치된 임시봉안소로 옮겨진다. 유해발굴 자문을 맡은 충북대 고고미술사학과 박선주 교수와 조교들이 유해감식소에서 유해와 유품을 정밀하게 감식해 기록으로 남기고 DNA 감식을 위한 샘플을 채취한다.

인식표나 사진, 도장, 이름을 새긴 반지나 수첩 등이 함께 발굴되면 그건 전사자나 유족에게는 행운이다. DNA샘플은 서울대 법의학과 연구팀(이숭덕 교수)으로 보내져 유족의 DNA와 비교해 신원확인을 한다. 그러나 DNA로 신원이 확인된 전사자 유해는 매우 적다.

유해는 화장을 한 후 영결식을 거쳐 각 지역 봉안소에 안치되었다가 일 년에 두 번 국립묘지에 안장된다. 국군으로 판명돼 신원이 확인된 유해는 대전 국립현충원에, 미확인 유해는 서울 국립현충원에 안장된다.

발굴 도중 발견된 북한군과 중국군의 유해는 유엔사 군사정전위원회를 통해 해당국으로 보내려 하고 있으나 인수를 거부함에 따라 경기도 파주에 있는 적군 묘지에 묻힌다.

아직도 이름 모를 산과 들에 묻혀있는 국군 유해는 10만이 넘는다고 한다. 유해를 안고 산을 내려오던 운구병에게 어떤 기분이냐고 물으니 “선배들의 유해와 유품을 찾을 때 마치 50년 전의 치열한 전쟁터로 돌아간 기분이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던진 군인정신이 진정 가슴에 와 닿는다. 이들이 있기에 국가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육군본부 전사자 유해발굴과 (02)505-1351~1355

사진ㆍ글/ 횡성=홍인기기자 hongi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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