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인이 EU 헌법을 반대한 이유는 ‘유럽이 하나가 되면 프랑스가 사라질 것’이라는 걱정으로 요약된다. 이 같은 정서에 현 정부에 대한 불만이 기름을 끼얹은 꼴이 됐다.
자크 시라크 정부는 10%대의 높은 실업률 등 경제문제로 국민반발을 샀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에 따르면, 올해 프랑스의 경제성장률은 1.42%인 반면 영국은 2.41%, 미국은 3.61%에 달한다. 시라크 대통령은 투표를 앞두고 장 피에르 라파앵 총리의 교체 의사까지 밝혔지만, 국민은 외면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프랑스의 위상과 일자리를 위협할 것이란 위기감이 작용했다. EU의 통합은 정치ㆍ경제적으로 프랑스에 실익이 없다는 것이다. 새 헌법이 그린 단일유럽의 청사진에서 프랑스의 위상은 독일과 영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위축된 게 사실이다. 이에 따르면 유럽 최대 인구국인 독일은 가장 많은 표결권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통합은 프랑스가 주도하고 정치주도권은 독일이 행사할 것이라는 심리가 유권자, 특히 우파 진영에서 팽배했다. 우파는 “프랑스가 EU에 너무 많은 주권을 양보했다”고 비난해왔다.
노조 등 좌파는 경제적으로 영국식 ‘앵글로색슨 자본주의(신자유주의)’에 휩쓸리는 것을 두려워했다. 독일 이탈리아까지 경제침체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영국식 모델’은 EU 내부의 ‘체제경쟁’에서 사실상 승리했다. 영국경제는 프랑스인 25만명을 고용할 만큼 상대적 우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프랑스인들은 규제철폐, 노동의 유연성, 자본개방을 내용으로 한 ‘신자유주의 개혁’이 정체성을 파괴하고 행복을 앗아갈 것이라고 여기고 있다. 유럽의 전통적인 사회보장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좌파진영에선 “EU헌법이 거대 시장경제를 창출해 프랑스의 복지 수준을 저하시킬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한편으론 EU확대로 이질적 요소가 들어오는 것에 대한 거부감도 섞여 있다는 분석이다. EU가 동유럽과 이슬람국가로 확대되면 저임금 국가들에 일자리를 빼앗길 것이라는 우려다. 프랑스 여론은 1년 전 동유럽권 10개국이 무더기로 EU에 가입한 이후 급속히 악화했다. 프랑스는 특히 터키와의 EU가입 협상을 껄끄럽게 여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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