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택아! 내가 왔다. 그 동안 얼마나 추웠니?”에베레스트의 차가운 설봉에서 숨을 거둔 박무택씨가 1년여만에 시신을 찾으러 고국에서 달려온 동료들의 품에 안겼다.
세계적인 산악인 엄홍길(트렉스타) 등반 대장이 이끄는 ‘초모랑마 휴먼원정대’는 29일 오후1시30분(한국시각) 박씨의 시신을 수습한 뒤 캠프3(8,300㎙)로 운구 도중 시신을 돌무덤을 쌓아 안치했다. 네팔을 향해 3월14일 출국한 지 76일만에 동료 박씨의 시신을 수습한 것이다.
지난 1999년 엄 대장과 K2봉 등 히말라야 4개봉을 함께 동반했던 박씨는 지난 5월18일 모교인 대구 계명대의 개교 50주년 기념 히말라야 원정대 소속으로 등정에 나섰다가 사고를 당했다. 원정대는 그러나 박씨의 일행인 장 민씨와 백준호씨의 시신을 찾는 데는 실패했다.
악천후에 고전하던 엄 대장과 휴먼원정대는 이날 새벽3시30분 캠프3를 출발해 마지막으로 박씨의 시신 수습작업에 나섰다. 6월부터는 몬순기후가 시작돼 날씨가 최악으로 악화해 사실상 등반이 어렵기 때문이다. 4시간30분 걸려 원정대원들은 결국 박씨의 곁(8,750㎙)에 도착했다. 박씨의 시신은 지난 1년간 산악인들에게 쉽게 노출되는 지점에 방치돼 있었다.
그러나 에베레스트에 남긴 회한이 너무나 깊은 듯 박씨의 시신은 쉽사리 그 자리를 뜨지 못했다. 에베레스트의 눈과 얼음이 박씨의 몸을 감싸고 있었던 것. 대원들이 정성스레 얼음을 떼내기 시작한 지 3시간20분만에 원정대는 박씨의 시신을 들고 캠프3를 향해 하산하기 시작했다.
시신 수습은 성공했지만 운구작업은 더욱 어려웠다. 50㎙의 깎아지른 절벽들이 하산 길을 막아 섰다. 숙련된 산악인들도 혼자 몸으로 내려오기 쉽지 않은 곳이어서 시신을 운반한다는 것 자체가 목숨을 걸어야 할 모험이다. 더구나 박씨는 생전에 몸무게가 70㎏이었지만 몸이 꽁꽁 얼어 100㎏ 불어났고 눈보라도 몰아쳤다. 또한 100㎙ 정도 길이의 경사진 바위 지대도 기다리고 있었다.
시신을 끌고 악전고투하며 2㎞거리의 캠프3로 내려오던 원정대는 결국 대원들의 안전을 고려해 시신을 8,650㎙의 세컨드스텝(가파른 암벽구간) 평탄한 곳에 안치하고 유품만 수습해 이날 오후5시 캠프3로 귀환했다. 원정대 베이스캠프(5,100㎙)관계자는 “박무택 대원이 히말라야를 사랑했고 산악인으로서 히말라야의 품에 묻히는 게 좋을 것으로 판단해 중국과 네팔이 잘 보이는 양국 국경지점의 좋은 곳에 안치했다”고 말했다.
4월초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휴먼원정대는 5월 중순을 D-데이로 삼았다. 하지만 몸조차 가누기 힘든 초속 20㎙의 강풍과 악천후는 2차례나 원정대의 발목을 잡았고 엄 대장조차 편도선이 퉁퉁 부어 말조차 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엄 대장은 자신과 박씨의 가족, 그리고 산악인들에게 한 ‘엄홍길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며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이날 마지막 시도 끝에 박씨의 시신을 수습하는데 성공했다.
박원식 기자 parky@hk.co.kr
■ 故 백준호대원 부인 "시신 못찾았지만 감사"
백준호(당시 38세), 박무택(36), 장민(28)씨 등 1년전 에베레스트에서 숨을 거둔 동료들의 시신을 찾아나선 ‘초모랑마 휴먼원정대’가 29일 박씨의 시신만 수습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다른 유족들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한결 같이 원정대의 노고에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백씨의 부인 김옥희(39)씨는 “현지 기상이 좋지 못하다고 들어 그 동안 원정대의 안전이 크게 걱정됐었는데 박씨의 시신만이라도 찾게 돼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면서도 “원정대가 남편의 시신을 찾아주리라고 기대를 했는데...”이라며 눈시울을 적셨다.
김씨는 이어 “남편은 후배들을 구하기 위해 사지로 올라가다 실종됐다”면서 “박씨의 시신만이라도 수습할 수 있었던 것은 원정대가 남편의 못다 이룬 마지막 뜻을 이뤄준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박씨의 부인 권은분(31)씨는 “할 말이 없다”고 착잡한 심경을 내비치며 극도로 말을 아꼈다.
권씨는 남편의 시신 수습 소식을 전한 계명대 산악회 관계자에게 “원정대원 모두의 노고에 깊이 감사 드리고, 몸 건강히 귀국하길 기원한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박원식 기자 park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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