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의 유감 표명만으로는 ‘야치 파동’을 매듭짓지 않겠다는 강경 입장을 밝힘에 따라 한일 관계는 당분간 경색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내달 하순 한일 정상회담에 관해 입장을 밝히지 않는 ‘모호 전략’을 내세운 정부의 진의도 관심의 대상이다.
먼저 정부의 강경 입장에는 발언의 사실관계가 결코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우리측의 강한 메시지가 담겨있다. 미국의 불신으로 한국과 정보를 공유할 수 없다는 야치 차관의 발언은 우리 외교의 근간인 한미 동맹에 대한 왜곡이라는 점에서 결코 간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유사 상황 재발 방지 차원도 고려됐다.
정부는 또 일본의 유감 표명 수위도 불만족스러워 하고 있다.‘오해를 샀다면 유감’이라는 유감 발언이 면피성인데다 야치 차관에 대한 ‘주의’조치도 상징적 수준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26일 일본에 사과를 요구할 당시 야치 차관의 발언을 ‘외교관례 상 대단히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평가했다가 이틀 후 ‘우리 정부를 폄하하고 동맹갈등을 조장하는 것을 볼 수 밖에 없다’고 강도를 높인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정부는 또 ‘망언→사과’식으로 봉합 되는 구태의연한 해법에 기대려 하는 일본의 태도에도 이번에만은 쐐기를 박으려 한다. 최근에도 일본 정치인들의 과거사 망언이 줄을 잇고 있는 상황에서 단호한 입장은 불가피하다는 말이 흘러나온다. 또 직업공무원인 야치 차관 문제를 덮는다면 망언의 주체가 일본 정계에서 관계로도 확대될 소지도 있다는 점도 우려된다. 정부 내 단호한 분위기는 외교부 보다는 청와대에서 짙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한일정상회담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확정적인 언급을 삼가고 있다. 한 당국자는 “일단 일본의 대응을 좀 더 지켜볼 뿐”이라고 말했다. 한일정상회담에도 적지않은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다.
하지만 ‘야치 파문이 해소되지 않으면 한일정상회담은 물 건너가는 것’이라는 강한 연계론이 대세인 것 같지는 않다. 한 당국자는 “역사왜곡과 독도 문제를 겪으면서도 정부는 한일 외교는 정상 진행한다는 방침을 설정했고 이 방침은 아직 유효하다”고 말했다. 결국 정부는 당분간 일본을 압박하고, 정상회담은 일본측 대응을 보면서 유연하게 다루겠다는 것 같다.
이에 따라 한일 간에는 파문 수습을 위한 물밑 움직임이 잦아질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내달 2일 방한할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총리 등 일본측 고위 인사들의 행보에 관심이 쏠린다.
이영섭 기자 youn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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