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의 과거사 진실 규명위원회가 김형욱 실종 의혹에 대한 중간 발표를 하던 지난 26일, 나는 저녁을 굶었다. 가슴이 꽉 막힌 것처럼 음식을 넘기기 힘들었다.
나는 맥주 두 캔을 마셨다. 울고 싶었고, 실제로 눈물이 흘렀다. “김형욱의 사돈의 팔촌도 아니면서 왜 우는 거야” 라고 나는 자신에게 물었다.
당시의 중앙정보부가 살인 작전을 주도하여 파리 근교에서 김형욱을 살해했다는 발표 내용은 지나간 한 시대의 악몽을 되살렸다. 그 시대의 피비린내가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소름이 끼치고 토할 것 같았다.
박정희와 김형욱과 김재규 들의 시대를 살면서 우리는 얼마나 깊은 상처를 입었던가. 언제 무슨 일로 잡혀가서 고초를 치를지 모른다는 공포가 우리의 삶을 지배했다. 비명이 터져 나오는 고문실 옆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일상적인 공포였다.
국정원 발표에 의하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이상열 프랑스 주재 공사에게 김형욱 살해를 지시했고, 이 공사와 중정 직원 2명이 김형욱을 자동차로 유인했고, 10만 달러에 포섭된 외국인 살인자 2명이 권총 7발을 쏘아 그를 죽였다고 한다. 김형욱의 최후에 대해서는 그 보다 더 참혹한 유언비어가 많았지만 막상 공식기관의 발표를 대하니 착잡하기 짝이 없다.
1979년 10월 7일의 그 사건이 갑자기 나를 우울하게 한 것은 내가 그 시대의 일원이었기 때문이다. 18살에 4ㆍ19를, 19살에 5ㆍ16을 겪고 군사독재 아래 신문기자가 되었던 나는 우리 세대의 젊은 날을 돌아보게 됐다.
36년에 걸친 일제 통치와 동족 상잔의 6ㆍ25를 겪은 윗 세대에 비하면 우리는 훨씬 나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30여 년의 군사독재 아래 젊은 날을 보낸 우리 세대도 따지고 보면 불행한 세대였다.
진리를 탐구해야 할 시기에 우리는 진리를 외면하고 두려워하는 때가 많았다. 이상을 꿈꾸고 불굴의 용기를 가져야 할 아름다운 나이에 우리는 공포와 굴종으로 길들여졌다. 우리의 생에서 가장 중요한 20~40대가 그렇게 흘러갔다.
국가기관이 김형욱 살해를 주도했다는 발표는 지난 시대의 상처들을 들쑤셔 냈고, 내가 살아온 불행한 시대를 새삼 증오하게 했다. 그리고 그 혐오감은 오늘의 국가정보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과거에 대한 혐오보다 현재에 대한 혐오는 더욱 절망스럽다.
국정원의 중간 발표가 나오자마자 그 허술함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발표된 내용은 당시 파리에서 살인 작전에 가담했다는 중정 직원 한 사람의 증언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고, 위원회의 민간위원들은 그 유일한 증인의 조사에 참여하지 못했고, 왜 중간 발표를 서둘렀는지 이유가 분명치 않다는 점 등이 지적되고 있다.
특히 김형욱을 살해한 권총을 살인자들이 현장에서 분실하여 물증이 전혀 없고, 도로에서 50m 정도 떨어진 숲에 낙엽을 덮어 시체를 숨겼다는 내용은 “도대체 국민을 바보로 아느냐”는 질타를 받기에 충분하다.
과거사 진상 규명은 왜곡되고 은폐된 역사를 바로 세워 역사의 교훈을 얻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정확한 진실 규명이 생명이다. 김형욱 실종 의혹에 대해서는 숱한 유언비어가 나돌았는데, 이번에 공식 기구가 내놓은 발표가 또 하나의 설로 인식된다면 과거사 진상 규명 작업의 앞날이 걱정스럽다.
김형욱 살해 사건은 당시의 권력이 얼마나 무법천지였고 폭력적이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그 상징적인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겠다는 30여 년 후의 국가정보원이 이런 수준이라면 슬픈 일이다. 무능뿐 아니라 국민과 역사를 두려워하지 않는 가벼움이 드러난다. 민간위원들이 왜 참여했는지 시대정신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 시대를 극복하려면 그 시대를 능가하는 능력과 정신이 있어야 한다. 불행한 시대를 살아온 사람으로서 그 점이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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