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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 파리서 권총 피살/ 여전한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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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 파리서 권총 피살/ 여전한 의혹

입력
2005.05.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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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 과거사위원회의 발표는 26년간 베일에 싸여있던 김형욱 전 중정부장 실종 미스터리의 윤곽을 드러내 놓긴 했지만 아직도 많은 의문점이 남아있다.

우선 과거사위가 발표한 김 전 부장 살해 및 시신 유기 과정은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 너무 많다. 과거사위는 당시 살해에 가담했던 신현진씨의 진술에 의존, “김 전 부장의 시신을 땅에 묻지도 않은 채 낙엽 속에 두고 왔다”고 했다. “유럽 숲은 낙엽이 많고 10월은 낙엽이 떨어지는 시기라 땅에 묻지 않아도 낙엽으로도 (은폐가) 충분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낙엽으로만 덮여있던 시신이 이후에도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는 점은 선뜻 이해가 안 되는 대목이다. 범행에 사용된 총을 제3국인이 분실했는데도 신씨가 이를 챙기지 않은 점도 석연치 않다.

김 전 부장을 유인하고 살해에 이용된 차는 이상열 주불 공사의 관용차량이었다. 남의 눈에 잘 띌 외교관 번호판을 단 차량을 범행에 버젓이 이용할 만큼 살해 계획이 허술했을까라는 의문도 떠오른다.

결국 허술하기만 했던 살해가 26년간 베일 속에 가려진 완전 범죄로 이어졌다는 얘기다.

신씨가 살해 준비 과정 등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진술하고도 살해 장소만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진술하지 않은 것도 진술의 신뢰성에 물음표를 찍게 한다. 그는 살해장소까지 직접 운전도 했었다.

때문에 이번 발표 역시 이전에 무수히 등장했던 김형욱 실종의 가설의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신씨의 진술에만 의존한 물증 없는 발표이기 때문이다. 과거사위측은 “신씨의 귀국 날짜 등 여러 정황 자료들이 신씨 진술에 신빙성을 갖도록 한다”고 했지만 결정적인 물증이 나오지 않는 한 이 역시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와 관련 파리 외곽 양계장 분쇄기에 넣어 살해했다고 주장한 이모씨를 과거사위가 직접 조사하지 않은 것도 이해 못 할 대목이다. 그는 최근 MBC 방송팀과 시사저널 취재기자와 함께 파리를 방문, ‘현장 검증’까지 했다. 과거사위는 “그가 국정원 공작원이었음은 확인했지만 주장하는 내용을 분석해보니 실현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와 사후 인지 여부 등도 풀어야 할 의문점이다.

박 전 대통령은 77년 6월 민병권 무임소장관을 특사로 파견 김 전 부장이 미 하원 프레이저 청문회에 출석하지 않도록 설득했다. 78년 12월에는 윤일균 전 중정 해외담당 차장에게 김형욱 회고록 관련 협상을 추진하도록 지시했었다. 이처럼 ‘김형욱 입막기’에 적극적이었던 박 전 대통령과 김 전 부장 살해와의 연결고리는 현재 전혀 파악이 되지 않는 상태다.

이동훈 기자 dhlee@hk.co.kr

■ 정부, 佛에 사과뜻 밝혀

국가정보원이 26일 김형욱 전 중앙정보부장이 프랑스 파리에서 중정 요원들에 의해 살해됐다고 확인함에 따라 양국간 외교마찰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의 중간조사 발표 이전에 외교채널을 통해 프랑스 당국에 내용을 통보하고 이해를 요청한 것으로 26일 알려졌다. 이에 대해 프랑스측은 “아직 조사가 완결되지 않았으며, 사건 자체가 1979년 10월로 26년전의 일이며, 한국 상황을 볼 때 사건 당시의 정부와 지금의 정부가 다르고, 과거사 청산 차원에서 이뤄지고 있는 일인 만큼 이해할 수 있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내용을 검토한 후 정하겠다”고 밝혀 최종 입장 표명은 유보했다.

이로 미뤄 프랑스측은 비교적 호의적이지만 신중하게 추이를 지켜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프랑스의 주요언론들도 국내 매체를 인용해 사실보도를 하고 있을 뿐 뚜렷한 논평을 달지 않고 있다. 프랑스 국내법의 공소 시효도 지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사건 자체가 프랑스 영토에서 우리나라 정보요원이 자행한 잔혹 범죄라는 점에서 여론의 향방에 따라 대응 수위가 달라질 가능성도 있다. 특히 고위 외교관인 주 프랑스 공사가 직접 개입했다는 발표 결과는 반 한국 정서를 부추길 수도 있는 민감한 사안이다. 최악의 경우 프랑스 당국이 사건 조사를 위해 생존한 범인들의 신병 인도요구를 할 수도 있다.

과거 유사한 사례로 볼 때 주재국 정부는 형식적이라도 이 같은 요구를 하고 항의를 함으로써 사법관할권을 확인해 왔다. 1974년 8월15일 문세광의 박정희 대통령 저격사건 당시 우리 정부는 배후로 지목된 김호룡 재일총련 오사카(大阪) 이쿠노니시(生野西) 지부 정치부장의 신병을 넘겨줄 것을 일본측에 요구한 바 있다.

또 일본측도 1973년 8월8일 도쿄(東京) 그랜드팔레스 호텔에서 자행된 김대중 납치사건의 범인으로 정보요원이었던 당시 주 일본 대사관의 김동운 1등서기관을 지목, 신병 인도를 요구했으나 정부가 이를 거부해 양국간 외교마찰로 비화되기도 했다.

홍석우 기자 musehong@hk.co.kr

■ 10·26변호 강신옥 변호사/ "김재규씨는 전혀 몰랐다"

강신옥 변호사는 26일 “김재규씨는 김형욱씨가 숨지기 전까지 파리 근교에서의 살해 내용 등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말했다. 10ㆍ26 사건으로 김재규가 사형당하기 전까지 변호를 맡았던 강 변호사는 이날 본보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당시 변호 과정에서 김재규씨에게 김형욱씨 사건에 대해 아는 바 있느냐고 몇 차례 물어봤지만 일관되게 자신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답변만 했다”고 말했다.

강 변호사는 또 “김재규씨는 ‘김형욱씨가 숨진 날부터 보름 정도 후 부하 직원들이 유럽출장을 가겠다고 해서 김형욱 사건으로 주변이 뒤숭숭할 때 중앙정보부가 괜히 의심 받을 행동을 하지 말라는 취지에서 출장지를 아시아 쪽으로 바꾸라고 충고한 적도 있다’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그는 “만약 중정에서 김형욱씨 살해를 지시했다면 전기고문까지 해 가며 김재규씨를 조사했던 당시 보안사측에서 왜 그러한 사실을 밝혀내지 못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강 변호사는 “휴머니스트 성향이 있는 김재규씨는 김형욱씨를 그런 방식으로 살해할 인물이 아니며 개인적 생각으로는 차지철 전 경호실장 라인에서 사건을 주도했을 수 있다고 본다”며 “김재규씨에 대한 민주화 유공자 지정 움직임이 있는 시점에서 왜 이 같은 말들이 나오는 지 의아할 뿐”이라고 말했다.

최영윤 기자 daln6p@hk.co.kr

■ 이상열 前공사 누구

이상열(76) 전 주프랑스 공사(중앙정보부 프랑스 거점장)는 군 출신으로 1963년 ‘원충연 대령 반혁명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김형욱 전 중정부장과 맺은 인연을 계기로 중정에 발을 들여놓은 뒤 승승장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중정부장이 살해되기 전 파리 이 전 공사와 시내 카페와 카지노 등지를 동행하고 사건 당일 돈을 구하기 위해 그를 만나는데 전혀 의심하지 않은 것도 이 같은 인연 때문이다.

이 전 공사는 과거사위의 3차례에 걸친 면담조사에서 사건 내막에 대해 전혀 입을 열지 않을 정도로 정보요원의 철칙을 지키는 등 평소 철저한 정보요원의 자세를 보여 후배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멕시코 공사를 거쳐 77년부터 주프랑스 공사를 지냈으며, 이후 미얀마, 리비아, 이란 대사를 역임했다. 그는 홍조근정훈장, 충무무공훈장, 을지무공훈장을 받았다.

이 전 공사의 지시로 김 전 정보부장의 납치ㆍ살해에 직접 가담한 신현진(가명)씨와 이만수(가명)씨는 사건 당시프랑스 파리에서 어학연수 중이던 중앙정보부 직원이었다. 사건당시 신씨는 3년5개월의 연수기간을 마쳤고, 이씨는 2년의 연수기간 중 3개월이 막 지난 상태였다. 신씨는 당시 직급에서, 이씨는 중앙정보부에서 고위간부까지 지낸 뒤 퇴직했다.

권혁범 기자 hb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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