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은 높다. 워낙 고산 지대에 위치한 터라, 길과 관련된 많은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우선 국내에서 가장 높은 국도가 이 곳을 지난다. 분주령 산행의 시작점인 두문동재는 해발 1,268m로 38번 국도에 속한다. 지방도 중 가장 높은 도로는 만항재이다. 태백, 정선, 영월의 경계에 위치한 414번 지방 도로는 해발 1,330m.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기차역은 태백 추전역(855m)이다.
차로 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길은 함백산 정상이다. 해발 1,573m이다. 국내에서 여섯 번째로 높은 산이지만 정상에 위치한 방송 송신탑까지 오르는 도로가 최근에 개통, 동네 뒷산보다 편하게 오를 수 있는 산이 돼 버렸다.
함백산은 태백의 진산(鎭山)이다. 태백산(1,567m)보다 더 높은 태백 제일봉이다. 일반인의 접근이 쉬워졌지만 등산객은 여전히 편한 길을 두고 두 다리로 산을 오른다. 분주령 못지 않게 많은 야생화를 보기 위함이다.
만항재에서 정선 정암사 방향으로 내려가다 보면 찻길 옆으로 등산로가 나 있다. 산행의 시작점이다. 경사가 완만한데다 정상까지 시야가 확 틔어 있어 산행에 어려움이 없다. 전국의 산하를 수놓았던 철쭉이 이제야 모습을 드러낸다. 조금 오르다 보면 시멘트 포장 도로와 마주친다. 함백산 정상까지 나 있는 도로이다. 이 길로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정상을 오를 수 있게 됐지만 산행길에 만나는 도로는 왠지 어색하다. 등산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요인이기도 하다. 차량으로 오를 때는 왜 느끼지 못했을까. 새삼 인간의 간사함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민들레, 양지꽃 등 야생화 군락을 음미하면서 1㎞가량을 오르면 어느새 정상이다. 동으로 태백 시내가, 서쪽으로는 정선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다. 북으로 북함백, 은대봉을 거쳐 분주령 산행 초입인 두문동재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 능선도 눈에 들어온다. 쉬운 산행을 산은 너무도 장엄한 풍광으로 환영한다.
짧은 산행이 아쉽다면 백두대간을 따라 두문동재까지 간다. 대체로 내리막의 연속이라 힘들지 않다. 정상에서 내려서는 순간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을 간다는 주목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백두대간의 산능선에서 바라 보는 신록이 싱그럽다. 초록 바다 위에 버티고 선 앙상한 가지가 묘한 대조를 이룬다.
3쉼터와 샘터가 있는 2쉼터와 1쉼터를 지나 은대봉으로 이르는 길은 초록 카펫 그 자체다. 마침내 도착한 은대봉(1,442m)에 서면 남한강의 발원지인 검룡소를 품은 금대봉을 절로 떠올린다. 함백산 아래 위치한 적멸보궁 정암사를 세울 때 조성된 금탑과 은탑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한 때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철도 터널이었던 정암터널(4,505m)이 이 아래를 지난다. 은대봉에서 1㎞를 다시 걸어 두문동재에 도착했다. 구름위의 산책은 그렇게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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