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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한 日 가라타니 고진 교수/ "한국만이 일본에 쓴소리 할 자격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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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한 日 가라타니 고진 교수/ "한국만이 일본에 쓴소리 할 자격돼"

입력
2005.05.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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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제대로 된 민주화 과정을 거친 나라입니다. 역사적 흠결이 적고 민주화를 이룬 한국만이 우경화하는 일본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고려대 개교 10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 참석 차 방한한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ㆍ64) 일본 긴키(近畿)대 교수를 25일 서울 안암동 고려대 우당관에서 만났다. 문학평론가로 출발해 철학, 역사, 건축 등 전방위에 걸쳐 독자적인 사유체계를 구축한 가라타니 교수는 아시아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각광받는 인문학 분야의 ‘월드스타’다.

그는 아시아 등 주변부의 문제의식을 서구사상과 접합해 독자적 사유체계를 구축한 일본의 비판적 지식인으로 잘 알려졌다. 1968년 도쿄대 경제학과를 거쳐 영문학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70년 호세이대 교수, 75년 예일대 방문교수, 97년 컬럼비아대 교수를 거쳐 현재 긴키대 인간과학국제센터 소장을 맡고 있다. 국내에는 97년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이 번역되면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은유로서의 건축’, ‘탐구’, ‘윤리 21’, ‘마르크스 그 가능성의 중심’ 등 주요 저서가 번역돼 있다.

넥타이를 푼 편안한 옷차림으로 나타난 가라타니 교수는 인터뷰 내내 동아시아에서 한국의 역할을 강조했다. “일본국민들은 그 자신이 문제가 많은 중국이나 북한으로부터는 어떤 말도 듣기 싫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은 일본에게 반드시 필요하고 고마운 비판자입니다.” 그는 “일본이 패전으로 인해 민주화를 강제당한 반면 한국은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민주화 과정을 경험한 국가여서 정치가나 시민들의 민주화 의식이 상당히 높다”며 “한국의 리더십이 동아시아를 이끌어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노무현 대통령이 한국에서는 어떤 평가를 받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고이즈미 일본 총리나 부시 미국 대통령 등 이상한 사람들이 수두룩한 세계 정치계에서 그들은 단연 빛나는 존재들입니다. 동아시아 전체에서 세계에 통할 만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한국 정치인 정도죠.”

그는 일본에 불고 있는 한류(韓流)를 높이 평가하며, 한류가 동아시아의 문화적 통합에 상당 부분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1990년대 작가회의 참석차 4번 정도 한국에 온 적이 있었지만 작가들끼리 모여 하는 그런 행사는 사실 별 의미가 없습니다. 하지만 한류는 대중 차원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난데다 자연스럽게 생활에 정착한 것이어서 뿌리가 깊지요. 실은 저도 욘사마를 좋아합니다.”

역사 교과서 왜곡과 영유권 분쟁에 대해서도 가라타니 교수는 명쾌한 해답을 제시했다. “독도 문제는 영유권 다툼이라기보다는 바다에서 생계를 꾸리는 사람들의 조업권 다툼입니다. 협상을 통한 조업권 조정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일이므로 양국이 어서 경제 협상에 나서면 됩니다.”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사람들의 후쇼샤(扶桑社) 교과서에 대해서는 “그릇된 사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책을 낼 권리는 있다”며 “국정교과서 1종으로 통제하는 것보다 다양한 사관의 교과서를 통해 아이들에게 선별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외국과 언론에서 하도 말들이 많으니까 도대체 어떤 책인가 한 번 보자는 심리에서 판매율이 올라갔을 뿐이지 그런 이상한 교과서를 가르치는 학교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2000년 ‘문학의 죽음’을 선언하며 “더 이상 문학평론을 하지 않겠다”고 밝힌 가라타니 교수는 현재 2003년 출간된 ‘트랜스크리틱: 칸트와 마르크스’에 이은 후속편을 쓰고 있다. 지난해 나온 ‘일본 근대문학의 기원’에 약간의 내용을 추가해 낸 개정판이 문학저술로는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제가 자랄 때 문학은 삶의 한 요소였지만 지금의 젊은이들이 그때처럼 문학과 함께 자라나리라는 기대는 갖기 힘듭니다. 그러나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문학이건 아니건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방법만 찾을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한 겁니다. 문학을 위해 사람이 사는 게 아니라 사람을 위해 문학이 존재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가라타니 교수는 28일 일본으로 돌아간다.

박선영 기자 aurevoi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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