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보드리야르는 좀 피로한 듯 보였다. 그 피로는 노구(老軀)로서는 다소 긴 여행과 빡빡한 일정에 기인한 육체적 피로 뿐 아니라, 일종의 정신적 피로, 또는 이론적 피로인 듯도 했다. 그는 그 동안 포스트모더니즘과의 관련성 등 자신의 이론에 대한 공격을 방어하느라 꽤 힘을 쏟은 듯 했다. 하지만 그 경계심이 풀리자 보드리야르는 열정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해 나갔다.
김=황우석 교수의 연구팀이 인간의 배아줄기세포를 추출하는 데 성공해서 전 세계적으로 대서특필되었습니다. 난치병 치료에 결정적인 전환점이 되었다는 평가인데요.
보드리야르=과학의 진화논리는 인간의 욕망이 영생불멸을 향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드러냅니다. 인간은 이제 종교를 통해서가 아니라 과학을 통해 영생을 얻으려고 합니다. 이런 열망 때문에 세포조작은 어떤 심리조작이나 상징조작과 함께 가기도 하는 것이지요.
김=인간배아복제는 윤리적 논쟁을 불러일으키기도 하는데요.
보드리야르=신성모독의 문제는 결코 아닙니다. 윤리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오히려 상징적인 문제입니다. 인간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라는 물음과 관련된 상징적인 문제지요. 모든 동물은 죽습니다. 죽지 않는 인간, 과연 그것도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물론 다른 동물과 달리 인간은 번식과 무관한 성행위를 즐기지만, 여전히 아직도 넘기 어려운 어떤 상징적 한계와 게임의 규칙이 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복제된 인간과 진짜 인간의 차이 역시 그런 상징적인 문제를 제기하지요.
김=선생님은 ‘아메리카’(1986)라는 여행기에서 미국을 모든 역사, 문화, 정치 등이 사라지는 어떤 사막으로 묘사했습니다.
보드리야르=그것은 비판이 아니었습니다. 역사를 지닌 유럽의 근대성과 역사가 없는 미국의 초근대성을 비교하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유럽이 근대성의 오리지널 버전이었다면 미국은 탈근대성의 오리지널 버전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진정한 세계화의 모델은 유럽이 아닌 미국에 있습니다.
김=동아시아 국가들도 여행하셨는데요, 미국이나 유럽과 비교해서 느끼셨던 차이점은 없었는지요.
보드리야르=이 지역 국가들도 이제 고도의 자본주의와 첨단기술개발 국가가 되었지만, 유럽이 거쳤던 근대화의 역사적 단계들을 거치지 않고 효율적으로 산업화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유럽 모델이나 미국 모델과 경쟁할 수 있는 효과적인 개발모델을 보여준 것입니다. 하지만 이 개발모델 배후의 문화적 전통과 가치체계는 저 같은 유럽인에게는 아직 미지의 신비로 남아 있습니다.
김=앞으로 중국이 미국과 경쟁할 수 있는 유일한 강대국이 되리라는 예견이 지배적인데, 세계화와 더불어 이런 정치경제학적인 변동이 낳을 수 있는 문화적 효과는 무엇이 될까요.
보드리야르=중국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어서 이슬람 문화권에 대해 먼저 말하자면, 이 지역은 세계화에 대해 강력하게 저항하고 있습니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테러는 말할 것도 없고 성 개방이나 소비문화에 반감이 큰 문화적 차원의 향토주의가 그런 저항의 보루입니다. 그런데 저는 중국에도 아직 문화적 향토주의가 남아 있다고 봅니다. 또 중국은 과학, 도덕, 경제, 예술 등의 가치들이 충분히 분화되지 않았습니다. 중국의 급속한 개발이 신비하고 애매한 것으로 비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김=선생님의 이론은 사회학, 경제학, 기호학, 형이상학, 미학 등 여러 이질적인 요소들을 창조적으로 뒤섞는 데 매력이 있습니다. 미래의 세계문화에 대해서는 동양적 사유와 서양적 사유를 뒤섞는 창조적인 퓨전이 필요하고, 또 그것이 불가피한 여정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어떻습니까.
보드리야르=완전한 퓨전, 그래서 어떠한 갈등이나 차이도 없는 그런 동질화는 불가능할 것이고, 또 바람직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일단 언어의 문제가 있습니다. 언어야 말로 세계화에 저항하는 가장 커다란 요인일 것입니다. 중립적인 기계언어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문화적 상상력과 분리된 그런 언어는 일상적이거나 인격적인 대화에서는 무의미합니다. 지구상의 이질적인 언어들은 궁극적으로 서로 비교 불가능하고 번역 불가능한 구석들을 지니고 있습니다. 또 세계화가 진행됨에 따라 도처에서 민족주의나 향토주의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이는 지난 19세기의 경우와는 또 다른 신민족주의, 신영토주의입니다.
김=왜 그럴까요.
보드리야르=글쎄요. 세계화의 끝은 문화적 차이들이 소멸하는 일종의 파국인데, 그런 파국으로 가는 리듬이 가속화할수록 거기에 저항하는 가역(可逆)반응도 많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것은 유체의 흐름이 가속화할수록 그 흐름을 분산시키는 여러 가지 소용돌이나 일탈적 흐름이 생기는 것과 같지요.
김=선생님은 ‘유혹에 대하여’(1979)라는 책에서 서양의 여성운동을 비판했습니다. 남성보다 우월한 여성의 특권적 속성을 강조한다든지, 남성의 권력에 대항하는 여성의 권력을 추구하는 전략은 별 소용이 없다는 말씀이셨는데.
보드리야르=그것은 서양사회를 기준으로 한 비판이었습니다. 남녀 불평등이 심한 곳에서는 여성 쿼터제도와 같이 인위적이지만 불가피한 조치들을 통해서 그 폐해를 줄여가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남성의 권력을 이기기 위해 여성의 권력을 강화한다든지, 남성의 권리에 맞서는 여성의 권리를 내세우는 것은 어떤 혼동 때문입니다. 남녀간의 차이, 독특하고 창조적인 에너지를 낳는 차이를 망각하기 때문에 그런 맹목적인 평등주의나 여성우월주의가 나오는 것입니다.
김=아직도 유교적 전통이 강한 우리나라의 여성들은 남녀 불평등을 호소하고 있는데, 이들에게 해주실 만한 말씀은 없는지요.
보드리야르=차이의 소멸은 언제나 재난을 가져옵니다. 성차(性差)의 소멸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여성의 정치적 해방을 반대하는 것이 결코 아니라, 그런 해방의 추구과정에서 정치적 자유와는 다른 차원에 있는 어떤 근본적인 것을 망각하거나 상실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내가 “유혹이 권력보다 더 강하다”고 말한 것은 바로 이런 문맥에서였습니다.
김=선생님의 글은 유혹적이면서도 매우 도발적이고, 그래서 독특한 인상을 줍니다.
보드리야르=저는 글쓰기를 물신(物神)처럼 추구하고 글쓰기를 좋아하면서도 그 때문에 강박증과 고민도 많이 겪는 사람입니다. 또 전자매체의 발전과 더불어 전통적인 문자문화의 장래가 불투명해졌지만, 우리는 아직도 여전히 글쓰기가 유효하고 필요한 시대를 살고 있다고 봅니다.
김=선생님께서는 종종 글쓰기를 ‘내기’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조금 더 설명하면 어떻게 될까요.
보드리야르=내기한다는 것은 도전한다는 것이고, 도전한다는 것은 진부한 것과 싸운다는 것이지요. 진부한 것과 싸우기 위해 극단으로 향해가는 것, 그것이 제가 말하는 내기하기 이고, 여기에 글쓰기의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김=선생님께서는 한때 포스트모더니즘의 슈퍼스타이셨습니다.
보드리야르=신화 같은 일이었지요.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유행사조가 아직 건재하든, 사라졌든 저와는 무관한 일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통속적인 수준의 명칭, 말하자면 상품 레벨과 비슷했던 이름입니다.
김=그렇다면 선생님 이론의 역사적 의미를 스스로 평가 하신다면 어떻게 될까요. 다시 말해서 선생님의 이론은 장래에, 가령 20, 30년 후의 독자들에게는 어떻게 읽히고 어떻게 남을까요.
보드리야르=(크게 웃으며) 그런 앞날을 내다본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미래라는 것이 현재와 연속적이고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니니까요. 저 나름대로 평가한다면, 저 같은 사람은 1920년대나 30년대의 유럽 지식인들의 에피고네(epigone.곁가지나 아류)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벤야민, 아도르노, 하이데거 등과 같은 당시의 지식인들은 우리 시대에 일어날 일들을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미국의 세계지배, 기술문명의 폭주, 영상시대의 도래 등 이 시대의 주요 근간을 이미 예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저 같은 사람들은 그들이 거시적으로만 볼 수밖에 없었던 것들을 자세하고 미시적으로 분석한다는 차이 밖에 없습니다. 또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얼마든지 과격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시대의 이론가는 충분히, 전적으로 과격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김=겸손하신 말씀이군요. 그래도 차이가 있을 텐데…. 마지막으로 요즘 준비하고 계시는 것이 있나 묻고 싶습니다.
보드리야르=늘 같습니다. 제 이론의 논리적 귀결점으로 향하고, 거기서 다시 내기놀이를 하는 것입니다.
◆ 장 보드리야르는…
1929년 프랑스 렝스에서 태어났다. 파리 10대학 사회학과 교수를 역임했고, 미국 뉴욕대 등에서 강의했다. 비평가이자 철학자로 프랑스 대표적 지성이며 현대성에 대한 가장 뛰어난 해석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꼽힌다. '사물의 체계' '시뮬라시옹' '소비의 사회' '유혹에 대하여' 등의 명저가 있다.
◆ 김상환 교수는…
1960년 서울에서 났다. 연세대학과 파리 소르본대학에서 철학을 했다. 1995년부터 서울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니체 프로이트 맑스 이후' '예술가들을 위한 형이상학' '풍자와 해탈-김수영론' '해체론시대의 철학' 등이 있다.
정리=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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