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노무현 대통령은 “이미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발언은 그의 의도가 무엇이었건 ‘경제권력 우위론’을 일깨워주는 묘한 울림으로 다가왔다. 송 복 전 연세대 교수는 노무현 정권 출범 직전 노무현 당선자가 삼성을 이길 수 없을 거라고 단언했다. 대통령과 삼성의 관계를 승패의 관점에서 보는 시각에 동의하긴 어렵지만, 삼성은 대통령 권력 위에 존재하는 더욱 막강한 권력일 수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 같다.
우리 시대는 ‘노무현 시대’라기보다는 ‘이건희 시대’로 기록될 지도 모르겠다. 노 대통령의 ‘동북아 균형자론’마저도 ‘세계 10위의 경제력’을 앞세워 제기되었다는 걸 상기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삼성이 곧 국력이고 외교인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건희 회장이 지배하는 삼성이 한국 전체수출액에서 주식시장 시가총액에 이르기까지 20% 이상의 몫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더욱 놀라운 건 삼성의 ‘문화적 패권’이다.
한국은 ‘정치’와 ‘경제’의 이중 구조가 문화로 고착화된 사회다. 일반 시민들의 정치적 삶과 경제적 삶이 각기 크게 다르다는 것이다. 예컨대, 정치적으론 개혁ㆍ진보적이더라도 경제적으론 보수적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신문 구독 행태다. 김대중ㆍ노무현 지지자들도 신문만큼은 악착같이 김대중ㆍ노무현에 적대적인 신문들을 구독해 왔는데, 그 이유가 바로 ‘정치 따로, 경제 따로’ 현상 때문이다.(오늘날 한국에서 신문 구독은 경제적 행위다.)
개혁ㆍ진보적인 정치인이나 저명 인사들 중에서도 재테크 솜씨가 탁월해 재산을 크게 불린 사람들이 의외로 많으며, 이게 흉이 되지도 않는다. 경제생활에 있어선 한국인들은 모두 다 “기존 질서에 순응해 일단 잘 살고 봐야 한다”는 원칙에 집착하기 때문에, 보수ㆍ진보 갈등은 주로 비(非)경제 영역에서 벌어진다.
이런 이중성은 이건희 회장에 대한 분열주의로 나타난다. 정치적 개혁ㆍ진보성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 회장이 노조 탄압에서부터 상속세 문제에 이르기까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인물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경제적 순응주의의 관점에서 보자면 이 회장에 대한 평가는 전혀 달라진다.
부실 경영으로 기업을 망하게 해 사원들을 길거리에 나앉게 만든 재벌 총수들의 이름은 열 손가락으로 다 꼽을 수 없을 만큼 많다. 기업인에게 그것 이상 더 큰 죄악은 없다. 그 점에서 보자면 이 회장은 17만 삼성 사원들에게 영웅이다. 뿐만 아니라 그는 ‘세계적 일류 기업’의 탄생을 고대했던 한국인들의 오랜 한(恨)을 풀어줌으로써 모든 국민에게도 영웅이 되었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무슨 조사만 했다면 하면 ‘존경받는 기업인’ 1위의 몫은 늘 이 회장에게 돌아갔다. 바로 이게 삼성의 ‘문화적 패권’일 것이다.
최근 고려대는 그런 ‘영웅’에게 철학박사 학위를 주는 건 당연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그러나 일부 고려대 학생들은 이 회장을 정치적으로 볼 걸 요구했다. 그들은 이 회장의 어두운 면을 지적하면서 고려대 당국의 ‘경제주의적’ 처신에 항의했던 것이다. 고려대 당국과 보수언론이 이 사건에 대해 호들갑을 떨면서 학생들에게 과잉 대응을 했던 진정한 이유는 사회적 묵계로 존재해 온 이 회장에 대한 분열주의에 정면 도전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제 이 회장은 그 스스로 역설해 온 이른바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시험대 위에 서게 되었다. 그는 자신의 위상에 걸맞는 발상의 전환을 시도해 ‘삼성 왕국’의 높은 담장을 허물고 사회와 소통해야 한다. 그가 ‘모든 면에서 존경받는 기업인’은 실현 불가능한 꿈이 아니며, 그 꿈의 실현이 장기적으로 삼성의 이익에도 도움이 된다는 걸 깨달으면 좋겠다. ‘이건희 시대’가 오명이 아닌 영예가 되길 바란다.
전북대 신방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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