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담도 개발사업 의혹의 큰 골격은 김재복 행담도개발㈜ 사장이 남의 돈으로 880억원대 자본금을 가진 회사의 대주주가 되고, 5,000여억원의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이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이 과정이 ‘뛰어난 사업 수완’ 때문인지 아니면 든든한 배후가 있기 때문인지가 앞으로 풀어야 할 의문점이다.
◆ 남의 돈으로 회사 접수
2001년 9월. 당시 행담도개발㈜의 양대 주주인 ECON과 현대건설이 공사비 문제로 분쟁을 겪고 있을 때 ECON이 김씨를 감사로 파견해 분쟁 조정을 맡겼다.
이 무렵 자금 압박을 겪던 ECON는 자회사인 EKI를 설립, 행담도 개발사업을 떠넘겼다. 이어 2002년 2월에는 행담도 추가 매립허가가 반려되는 등 사업이 지연되면서 어려움을 겪었다. 이 때 김 사장이 경남기업에서 120억원을 끌어와 JJK라는 자신의 회사를 설립한 후 EKI의 지분 58%를 인수했다. 이 사업에 총 90억원을 투자했던 ECON은 120억원을 받고 사실상 한발 물러섰다. 김 사장은 “EKI가 부도 위기에 처하는 등 추가 투자자도 찾기 어려워 내가 직접 나섰다”고 했다.
그렇다면 경남기업은 무슨 이유로 김 사장에게 120억원의 돈을 빌려줬는지가 의문이다. 경남기업이 이후 2단계 개발사업의 시공사가 되긴 하지만, 당시 2단계 개발사업 추진 여부도 불투명한 상태였다. 이후 EKI는 현대건설의 지분 26.1%까지 인수해 행담도개발㈜의 90% 지분을 소유하게 됐다. 돈 한 푼 안낸 김 사장이 행담도개발㈜의 최대주주가 된 것이다.
◆ 남의 돈으로 880억원 증자, 5,000억원대 사업 추진
2단계 사업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행담도 주변을 매립해 관광시설 등을 건립하는 것으로 1단계 포함해 총 5,000억원의 예산이 소요되는 사업. 이를 위해 김 사장은 3억 달러의 펀딩을 하려 했으나, 펀드액이 자본금의 4배 이상을 초과할 수 없는 규정 때문에 8,300만 달러의 EKI 채권을 발행하려는 계획을 세웠다.
바로 이 과정에서 지난해 1월 도로공사와 문제의 1억 500만 달러의 지급 보증 계약을 맺었다. 김 사장은 실패해도 1억 500만 달러를 보장받고 성공하면 수익의 90%를 차지하는 반면, 도로공사는 이익이 나면 10%의 이익을 챙기는 반면, 실패하면 100% 책임을 지는 희한한 계약을 맺었다. 이어 같은 해 9월 문정인 동북아시대 위원장과 강영일 건교부 국장으로부터 추천서까지 받았고, 결국 올 2월 정보통신부와 교원공제회가 8,300만 달러의 채권을 인수했다. 자본금 100억원이었던 행담도개발㈜을 880억원으로 증자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이 과정에도 김 사장은 자기 돈을 전혀 내지 않았다.
김 사장은 올해 말까지 3억 달러의 채권을 추가로 발행할 계획이었고, 도공은 이 같은 계획에도 ‘신용보증계약’을 체결했다. 해외 로드쇼에서 투자자를 원활하게 모집할 수 있도록 이 사업에 도공이 손을 떼지 않고 계속 참여할 것이라고 홍보해도 좋다는 내용이었다. 일반인으로선 수수께끼나 다름없는 ‘이상한 성공 드라마’의 연속이었다.
송용창 기자 hermeet@hk.co.kr
■ 동북아委, 관련부처 아닌데 왜?
문정인 대통령 자문 동북아시대위원장이 한국도로공사와 ‘㈜행담도개발’(HIDC) 등이 추진해온 행담도 개발 사업을 적극 지원해온 것으로 밝혀지자 청와대는 적극 해명에 나서면서 사태의 파장을 주시중이다.
당초 도로공사가 외국 회사와 불공정 계약을 체결한 것이 논란이 됐으나 이제는 문 위원장이 행담도 개발에 개입한 의혹과 배경들에 촉각이 모아지고 있다.
문 위원장은 24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지난해 9월 동북아위는 행담도개발 사업이 서남해안 개발 사업에 도움이 된다는 자체 판단에 따라 행담도개발의 해외채권 발행을 위한 지원의향서를 발급했다”고 해명했다.
문 위원장은 “금년 2월에 행담도개발과 도로공사 사이에서 중재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도공과 EKI의 계약 문제 논란에 대해 처음 알게 됐다”며 “그것은 금융 기법의 하나로 불공정 계약이 아니라는 게 동북아위 직원들의 판단”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관련 부처도 아닌 대통령 자문기구가 개발 사업에 직접 관여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정부 관계자는 “대통령 자문기구가 민간 기업에 추천서를 써주면 특혜 논란이 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문 위원장은 “지원 의향서 발급의 적법성, 적절성 여부는 감사원이 판단하겠지만 당시는 무방하다고 생각했다”고 해명했다.
또 문 위원장 아들이 금년 1월부터 행담도개발㈜에 근무하고 있는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문 위원장은 “내 아들은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는데 김재복씨가 먼저 제의해 취직하게 됐다”면서 “3개월은 무료로 일했고 지난달부터 매달 250만원을 받고 있는데 결과적으로 물의를 일으켜 국민들에게 죄송하다”고 말했다. 동북아위는 “정당한 취업 아니냐”고 변호하지만 문 위원장이 적극 지원한 회사에 자신의 아들을 취직시킨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행담도 개발에 대해 사전에 알고 있었느냐도 궁금한 대목이다. 문 위원장은 “지난해 11월 한국과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서남해안 개발 사업이 논의된 적이 있다”면서 “노 대통령에게 서남해안 개발 사업에 대해서는 보고했으나 행담도 개발에 대해서는 보고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감사원 감사 결과를 토대로 문 위원장에 대해 책임을 물을 지를 결정할 방침이다. 김만수 청와대 대변인은 “무리한 사업 추진이나 문제점이 있었는지는 현재 감사원에서 철저히 조사하고 있으므로 그 결과에 따라 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광덕 기자 kdkim@hk.co.kr
■ 김재복 행담도개발㈜ 사장 인터뷰
현재 외부와의 연락을 끊고 잠적중인 김재복 행담도개발㈜ 사장은 24일 한국일보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내 뒤에 아무런 배후도 없다”며 “이번 사건의 여파로 사실상 행담도 개발 사업은 더 이상 진행할 수 없을 것 같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개인이력은?
“대구출신으로 수도권에서 고교를 졸업하고 독일유학을 했다. 학업을 마친 후 90년대 초부터 프랑스계 다국적기업의 동남아시아 투자 관련 부서에 근무했다. 그 덕에 동남아에서 금융전문가로 내가 좀 알려진 편이었는데 싱가포르쪽에서 같이 일하자고 제의해왔다. 현재 싱가포르 전력청 고문직을 맡고 있다.”
-행담도 개발에 관여한 경위는?
“2001년 9월 싱가포르 ECON의 요청으로 행담도개발에 감사를 나왔었다. ECON에서는 사업진척이 잘 안되고 있으므로 잘 내용을 파악해서 사업계속 여부 타당성을 판단해달라고 했다. 그 해 3달 동안 감사한 결과 ‘가능성이 있다’는 판단이 나와서 이를 보고했더니 그 쪽에서 ‘그러면 제임스 졸리 킴(나의 영어이름)이 맡아서 해보라’고 했다. 이를 입증할 공문도 있다. 그러던 중 2002년2월에 행담도 추가 매립허가가 환경단체의 반대로 반려되는 등 상황이 악화하자 EKI가 매각위기에 처했다. 그래서 내가 나의 영문 이니셜을 딴 JJK사를 설립해서 58%의 지분을 인수하며 본격적으로 사업에 뛰어들었다.”
-EKI가 2009년에 행담도개발㈜의 주식 매수를 요청하면 도로공사가 1억500만달러에 인수한다는 계약은 불공정하다는 지적이 있다.
“도공이 불리할 게 없다. 도공은 현재 행담도개발㈜ 주식의 10%밖에 없는데도 매월 매출액의 3%를 떼어가고 있다. 또한 사업 주관사와 매립지의 지주도 모두 도공이다. 즉 자산 모두가 도공 소유인 셈이다. 또 2035년이면 회사를 전부 기부체납 해야 하는 조건 등을 감안하면 절대 불공정 계약이 아니다. 자본을 유치하는 국가에서 이 정도 개런티해주는 것은 국제투자 관행이다.”
-우정사업본부 등의 채권매입 경위도 의혹사항이다.
“국제적 금융거래 차원에서 보면 지극히 정상적인 딜 이다. 우정사업본부 등이 절대로 손해 볼 장사를 한 것이 아니다.”
-문정인 동북아시대 위원장이 추천서를 써준 경위는.
“문위원장은 지난해 5월인가 동북아시대 위원장으로 온 뒤에 처음 알게 됐다. 미국에서 채권을 발행하려면 국제신용평가 회사 2개 이상의 평가서가 필요하다. 이미 무디스로부터는 투자적격등급인 BBB를 받아놨으나 피치로부터는 받지 못했다. 그래서 문위원장에게 추천서를 부탁했다. 문위원장이 “한국은 관광ㆍ미래산업을 적극 후원중이다”는 내용의 지원의향서를 써주었다. 이를 첨부해서 피치로부터도 BBB를 받았다.”
-문정인위원장과 오점록 전 도공사장 아들의 취업경위는.
“오씨의 아들은 미 애리조나 피닉스대 MBA출신이다. 마침 우리가 필요한 인물이어서 서해안 프로젝트 담당으로 스카우트했다. 그러나 올 3월 감사 때 이게 문제가 되니까 스스로 사표를 냈다. 문 위원장 아들도 프린스턴대 출신의 인재로 미국 직장에 다니고 있었는데 역시 미국관계 일을 처리하는 데 적임자여서 우리가 먼저 제의해 데려왔다.”
송용창 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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