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봄날 아침, 당신은 홀연히 떠나는군요. 2차 대전과 한국전쟁의 시련 속에서 젊음을 보내고 폐허가 된 이 땅에 경제 재건이라는 과제와 씨름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형은 그 어려움 속에서도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았습니다. 그 미소는 갈등과 가난의 비극적 상황을 극복하는 데 큰 힘이 되었으며 인류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었고, 그 사랑은 문화예술에 대한 간절한 애정으로 구현되었습니다.
무엇보다도 가난을 극복하고 잘 살아야 하지만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한 사회복지가 아니라 문화복지를 구현해야 한다는 것을 형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형으로서는 문화예술에 대한 애정은 단순한 개인적 애호의 단계를 넘어서 문화복지의 구현이라는 이상을 향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형이 메세나협의회 회장으로서 혼신의 노력을 아끼지 않은 것도 그러한 연유에서일 것입니다. 금호사중주단을 창단하고 통영국제음악제 이사장으로 음악에 남다른 애정을 보여 왔지만 그 사랑은 단순한 애호가의 경지를 넘어서 창조의 뿌리에 깊이 관여해 왔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젊은 영재를 발견하고 지원한다는 것은 미래의 창조적 결실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작년 가을 형은 팔당호반의 분원리 얼굴박물관에 들러서 미술 분야의 젊은 화가들을 위한 레지던스 작업장 건립을 위해 부지를 찾고 있다고 했습니다. 음악만이 아니라 미술, 공연 등 예술의 모든 분야에서 젊은 영재를 발견하고 지원하려는 형의 간절한 소망과 애정은 창조적 정열과 통한다고 믿습니다. 그것은 창조적 정열을 젊은이들에게 북돋아주고 반대급부로 잃어버린 청춘을 되찾게 된다고 믿습니다.
“문화예술을 사랑한다는 것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고 젊음을 사랑하는 것이고 인류의 미래는 믿는 것이야.” 대충 이런 얘기를 형이 한 것 같은데 한 해가 다 되기도 전에 홀연히 떠나는군요. 이제 창조의 기쁨을, 사랑의 잔치를 나눠야 할 마당에 형은 홀연히 떠나는군요.
그러나 인류를 사랑하고 평화를 사랑하고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모두의 마음 속에 형은 영원히 머물고 있음을 우리는 압니다. 젊은이들의 마음 속에, 예술적 창조의 박수 속에, 사람답게 살기 위한 문화복지의 이상 속에 형의 뜨거운 애정과 미소는 그대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만남과 헤어짐의 영원한 아쉬움의 시간 속에서 형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김정옥 예술원 회원ㆍ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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