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ㆍ11 테러 직후 모든 항공사가 기내식 서비스에 내놓던 금속제 포크와 나이프를 치워버렸다. 테러범들이 주머니칼로 승무원을 위협해 여객기를 납치한 것으로 드러난 때문이다. 이에 따라 여객기 테러 비상 속에 승객들은 손톱 손질용 가위나 족집게조차 지닐 수 없고, 1등 석에서도 1회용 플라스틱 포크와 나이프로 옹색한 식사를 해야 했다.
엄청난 테러 충격 속에 승객들은 전에 없이 엄중한 보안조치를 따르면서도 한편 어이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상식을 벗어난 과잉 예방조치는 문명사회가 알 카에다 테러 위협에 굴복하는 것이라는 지적까지 나왔다.
■우리 항공사들은 한 동안 플라스틱 제품을 쓰다가 다시 금속제로 바꿨다. 행선지 국가가 규제하는 몇몇 노선만 아직 1회용을 쓴다. 보안검색 강화와 조종실 접근차단 등 여러 예방조치를 취한 데다, 후속 테러에 대한 공포가 진정된 데 따른 것이다. 승객 서비스를 마냥 외면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한 미국과 영국 등은 금속제품을 계속 금지했고 과잉규제 논란도 이어졌다. 테러 예방도 좋지만 애초 쓸데 없는 짓이라는 비판이 많았다.
■‘테러와의 전쟁’에 누구보다 적극 동조하던 영국 정부가 마침내 이 규제를 풀었다. 브리티시 항공(BA)은 월요일부터 1ㆍ2등 석 승객에게 금속제 포크와 나이프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BA는 원래 무게 부담을 이유로 3등 석은 1회용을 쓴다.
언론은 뒤늦은 규제 완화를 ‘상식의 승리’라고 논평했다. 손톱 가위 따위를 압수하는 우스꽝스러운 규제도 곧 풀릴 것이란 기대를 덧붙였다. 그리고 지나친 규제조치는 알 카에다의 이미지를 각인 시키는 역효과가 더 컸다고 평가했다.
■이런 논평은 나아가 정부의 신뢰 상실을 지적한다. 테러 경계를 강화한다며 과잉 규제와 황당한 테러 경보를 남발한 것은 무책임하고 테러 대응에도
도움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부시 대통령과 블레어 총리는 정치적 목적으로 테러 공포를 부추긴 흔적까지 있다고 비판한다. 따라서 의회와 사법부, 그리고 지각 있는 국민은 ‘테러와의 전쟁’ 명분을 앞세운 정부 정책을 늘 잘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내식 나이프 규제는 언뜻 사소한 문제지만, 그걸 논란하는 수준은 이렇듯 높다. ‘테러와의 전쟁’에 동참한 우리사회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