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별세한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은 1967년 현대자동차 초대 사장에 취임한 이후 ‘포니차’ 신화를 이끌며 32년 동안 자동차 외길 인생을 걸어왔다. 그는 1999년 현대그룹의 경영권 분란으로 현대차의 경영권을 장조카인 정몽구 현 현대자동차회장에게 물려주고 현대차를 떠났지만 현대차의 성장기반을 닦은 명실공히 한국자동차업계의 대부였다.
◆ 자동차 산업의 산증인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넷째 동생인 그는 1928년 강원 통천에서 태어났다. 1953년 고려대를 졸업한 후 1957년 미국 마이애미 대학에서 정치외교학 석사 학위를 받고 돌아와 현대건설에 입사했다. 초대 태국 지사장 시절인 1965년 우리나라 최초의 해외공사인 태국 파타니-나라티왓 고속도로 공사를 수주했다. 이 공사는 현대건설 해외 건설 시장 진출의 시발점이자 경부고속도로 공사의 초석이 됐다.
1967년 12월 현대자동차 설립과 동시에 사장에 취임한 그는 공장건립에서부터 기술합작에 이르기까지 기능공들과 숙식을 함께 하며 현대자동차의 터전을 마련했다. 공장 건설도 채 되지 않은 상태인 1968년 1호차 코티나를 생산했고, 1974년 포드사와의 합작이 난관에 부딪치자 고유 모델 개발에 힘써 포니를 만들어내는 괴력을 발휘했다. 포니의 탄생으로 세계 자동차 시장은 한국을 주목했다. 포니는 생산되기 전부터 62개국 229개 상사에서 수입을 희망했을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는 1987년 현대그룹과 현대차 회장을 맡으면서 자동차, 중공업, 건설, 전자, 화학 등 국가기간 산업을 주력 업종으로 선언하고 해외시장 개척에 힘을 쏟았다. 이후 89년 쏘나타, 90년 엘란트라, 94년 엑센트로 수출의 맥을 이어갔고, 아반떼(95년), 아토스(97년), EF소나타(98년)를 계속 세계시장에 내놓으면서 국내 자동차 수출을 주도했다. 특히 86년에는 포니ㆍ엑셀이 미국 10대 상품에 선정되면서 ‘포니정’이라는 애칭을 얻었다.
◆ 건설인으로 제2의 도약
그러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정세영 회장은 비운을 겪어야 했다. 정세영 회장은 주주총회에서 가까운 인물을 이사로 선임하면서 경영권 장악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형 정주영 회장의 노여움을 사게 된다.
정세영 회장은 2000년 11월 펴낸 회고록 ‘미래는 만드는 것이다’ 에서 32년간 몸담았던 현대자동차를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은 형의 한마디 때문이었다고 소개했다. “몽구가 장자인데 몽구에게 자동차 회사를 넘겨주는 게 잘못됐어?”
그는 1999년 3월 현대차 부회장이던 아들 몽규와 함께 현대산업개발로 자리를 옮겨 건설인으로 제2의 인생을 열었다. 정세영 회장은 현대산업개발에서도 경영능력을 발휘해 회사를 지난해 건설업계 시공능력 4위 업체로 끌어올리는 수완을 발휘했다. 1999년부터 암투병을 해 온 그는 18일 보유지분 542만 5000주(7.2%)를 외아들인 정몽규 회장을 비롯, 큰 사위와 막내딸 유경씨에게 넘기면서 상속을 마무리했다.
김혁 기자 hyukk@hk.co.kr
■ 이건희회장 등 각계인사 조문 줄이어
정 명예회장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 풍납동 서울아산병원에는 21일 오후부터 고인의 명복을 비는 각계 인사의 조문 행렬과 조화가 답지했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22일 오후 8시 부인 홍라희여사와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상무, 이학수 구조조정본부 부회장 등 삼성 그룹 임직원과 함께 빈소를 찾아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이 회장은 빈소 옆에 마련된 응접실에서 약 10분간 머물면서 “재계 및 사회 선배로서 더 지도를 해줘야 하는데 너무 빨리 돌아가셔서 안타깝다”고 상주인 정몽규 현대산업개발회장 등 유족들을 위로했다.
이 회장은 정 명예회장이 1999년 폐암 진단을 받고 미국 M.D. 앤더슨 암센터에서 치료를 받은 시기에 비슷한 치료를 받아 자주 연락하며 각별한 친분을 유지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에서는 또 구본무 LG 회장과 이웅열 코오롱 회장, 정의선 기아자동차 사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이 빈소를 찾아 고인을 추모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최규하 전 대통령은 21일 조화를 빈소에 보내 애도를 표시했다. 이해찬 국무총리와 김원기 국회의장, 여야 대표 등도 조화를 보내 고인을 추모했다. 북한 조선아태평화위원회 이종혁 부위원장도 조전을 보내왔다. 현대산업개발 관계자는 “21일 정ㆍ재계 인사 300여 명이 빈소를 찾은 데 이어 22일에도 500여 명이 다녀갔다”고 전했다.
김혁기자
■ 재벌가에 '폐암 경보'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회장이 폐암으로 별세하면서, 재벌 총수들 사이에 ‘폐암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삼성, SK, 금호아시아나그룹 등 국내 주요 재벌 총수 가운데 상당수가 폐 질환으로 세상을 떴거나 지금도 앓고 있기 때문이다.
고 이병철 삼성 명예회장이 1960년대에 폐암 진단을 받았고 이건희 삼성 회장도 99년 림프절 전이암이라는 일종의 폐 질환으로 수술을 받았다. SK는 ‘폐암 쓰나미’가 일가를 휩쓸었다. 창업주 최종건 선대회장이 44세 때인 73년 폐암으로 별세했다. 25년 후 동생인 최종현 SK회장도 폐암으로 작고했다. 최종건 선대회장의 맏아들로 최종현 회장에게는 장조카인 최윤원 SK케미칼 회장도 폐암 때문에 2000년 5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금호아시아나그룹도 박정구 회장이 폐기종 진단을 받고 폐암으로 별세한 데 이어 형인 박성용 명예회장도 폐질환 수술 후유증을 겪고 있다.
건강 관리에 철저한 재벌 총수들이 유독 폐암에 약한 원인은 무엇일까. 우선 유전적 요인이 큰 것만큼은 확실해 보인다. 또 간암과 위암은 조기에 발견하면 치유 가능성이 높은 반면, 폐암은 조기 발견 자체가 쉽지 않고 발견되더라도 치유 확률이 높지 않다는 점도 원인으로 설명된다. 폐암이 스트레스와 밀접하게 관련돼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많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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