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뉴욕 채널을 통해 미국의 대 북한 정책을 직접 설명함으로써 6자 회담 재개를 위한 중요한 전환점을 맞고 있다. 남북간 차관급 회담과 동시에 진행된 북미 직접 접촉은 거의 1년 만에 북한이 회담장으로 나설 외적 조건이 조성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이번 접촉은 북한의 우회적 의사타진에 대한 직접적인 답변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점에서 6자 회담 재개를 위해 고무적인 신호를 내고 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8일 “미국이 우리를 주권국가로 인정하며 6자 회담 안에서 쌍무회담을 할 준비가 돼 있다는 보도들이 전해지고 있기에 그것이 사실인가를 미측과 직접 만나 확인해보고 최종 결심을 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 3월 7일자도 미국이 6자 회담 재개를 바란다면 다른 통로로 돌지 말고 대통령이나 국무장관이 정책 전환의 입장을 공개 표명하거나 뉴욕 채널을 통해 공존의사를 직접 전달하면 된다고 밝혔다.
미국은 북한의 성명이 나온 지 5일 만에 조지프 디트러니 대북협상 전담 대사를 뉴욕 북한 대표부에 보내 북한의 ‘직접 의사 확인’ 희망에 부응했다. 북미가 사실상 양자대화를 시도한 셈이다. 이로써 미국은 회담장 복귀 명분을 찾고 있는 북한 관리들의 발걸음 앞에 ‘체면’이라는 디딤돌을 깔아주었고, 스스로는 미국의 완고한 입장이 6자 회담 재개의 걸림돌이라는 다른 참여국의 압력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동시에 미국은 북한이 회담을 계속 거부할 경우 다른 참여국에 북한 포위망에 동참하도록 요구할 명분을 쌓게 됐다.
형식뿐 아니라 내용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북한은 회담 재개의 조건으로 미국의 적대정책 포기를 요구해왔다. 콘돌리사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3월 이후 ‘북한 주권 국가 인정’‘대북 불침공’입장을 여러 차례 표명함으로써 북한의 적대정책 포기 요구에 일면 부응하는 모양을 취해왔다. 이번 뉴욕 접촉은 미측의 장외 발언을 재확인시킨 통로인 셈이다.
전문가들은 ‘2주내’ 나올 북한의 회신도 긍정적인 톤을 띨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북한이 미국으로부터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외면상 양보를 얻어낸 데다 중국의 입장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18일 디트러니 대사가 “북한이 6자 회담에 참여할 것으로 본다”고 말하는 등 관련국으로부터 회담 재개의 기대감을 표시하는 발언들이 이어지는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장이 열린 뒤의 합의 도출 가능성이다. 미국은 일단 북한이 회담장에 나오면 6자간 대화 또는 양자 대화를 통해 협의에 탄력을 두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그러나 지난해 6월 3차 회담에서 제의된 미국의 제안은 북한의 요구와는 큰 간격이 있어 양측이 타협을 찾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따라서 어렵게 마련되는 회담이 열매를 맺지 못하고 양측의 입장을 확인하는 선에서 끝난다면 6자 회담은 다시 교착의 수렁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워싱턴=김승일 특파원 ksi8101@hk.co.kr
■ "현행 6者 운용방식 합의 도출 어려워"
북한 핵 문제를 전담하는 조태용(趙太庸) 외교부 북핵 외교기획단장이 18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조지 W 부시 2기 행정부의 한반도 정책 전망’ 세미나에서 6자 회담이 재개되는 상황을 전제로 하는 운용 개선 필요성을 제기했다.
조 단장은 “현재의 6자 회담은 합의의 충실한 이행을 보장하는 데는 최상의 틀이지만 해법을 도출하는 데는 별로 효과적이지 못했다”고 말했다. 각자가 자기 주장만 늘어놓는 유엔 총회 방식의 6자 회담 운영이 합의 도출을 어렵게 하는 한계를 지적한 것이다.
조 단장은 대안으로 장관급 조정위원회 아래 핵, 기술ㆍ경제, 정치의 국장급 3개 소위를 두고 매주 조정위나 3개 소위 중 한 개는 반드시 열며, 소위 논의 사항을 조정위에 올려 결정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 유럽연합(EU) 3국(독일 영국 프랑스)과 이란간 핵 회담 틀의 벤치마킹을 제안했다.
조 단장은 “최근 북한의 부정적인 행동으로 인해 한가하게 회의를 진행할 사치를 누릴 수 없게 됐다”며 “점진적인 접근보다 가속화한 접근방식을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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