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번역된 ‘칭기즈칸, 잠든 유럽을 깨우다’에서도 그랬듯이 잭 웨더포드는 문명의 발전이라는 거시적인 시야를 확보하고 있는 인류학자이며, 꽤 뛰어난 글솜씨를 자랑하는 저술가다.
문명사를 보는 비판적이고 색다른 시각을 편안한 문체로 엮어가는 것은 이번 ‘야만과 문명, 누가 살아남을 것인가’에서도 여전하다.
이 책은 그가 세계를 다니면서 보고 만난 호주의 애버리진, 중국의 티베트인, 멕시코의 라칸돈, 말리의 투아레그족, 알래스카의 알류트족, 일본의 아이누족, 뉴질랜드의 마오리, 볼리비아의 아이마라족 등의 생생한 사례를 통해 부족문화의 다양성은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국민국가가 대두하면서 부족문화의 질서는 어떤 곡절을 겪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인류 1만년 역사에서 이들 부족의 부침을 설명하며 그가 결론으로 끌어내는 것은 인간의 진보는 문명의 충돌 때문이 아니라 문명간의 교류와 갈등을 통해 만들어졌다는 것이며, 늘 승자였던 문명이 내부에서 얼마나 야만적인가를 고발하는 것이다.
체벌 대신 철저한 침묵과 격리로 범죄자를 교화하기 위해 영국 빅토리아 시대 태즈메이니아 섬에 ‘문명의 징표’로 세웠던 형무소가 결국 수감된 ‘야만인’을 전부 미치게 만들었다거나, 세계 최초의 도서관이던 알렉산드리아의 무세이온이 수 세기에 걸쳐 특히 정치적인 격변으로 서서히 파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교도나 미개인의 손에 불탄 것처럼 알려져 있는 것이 그런 사례들이다.
“가장 야만적인 생활방식은 이제 우리의 가장 현대적인 도시 한 가운데에서 발견된다.” 저자는 “문명이 승리감에 도취된 듯이 보이는 바로 이 순간, 문명이 외적을 모두 쳐부수고 세계의 주인이 된 이 순간, 문명과 맞설 경쟁 체제가 남지 않은 바로 이 순간 문명은 이제까지 그 어느 시기보다도 더 중대한 위험에 처한 것 같다”고 경고한다. 문명이여, 이제 내부의 적에 눈을 돌려라, 그리고 겸손하라. 웨더포드의 충고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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