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대 후보에 비판과 비난을 몰아 붓는 네거티브 전략은 열세에 처한 쪽에서 역전을 바라며 구사하는 선거운동이다. 우위인 후보는 대개 포지티브 전략을 동원하며 네거티브 방식은 줄인다는 게 선거연구의 일반론이다.
비판과 폭로가 근거를 가졌을 때 유권자에게는 투표 정보에 해당한다. 이 경우엔 상대의 지지율을 끌어내리면서 자신의 지지를 올리는 효과를 거둔다. 대신 저질 인신공격이나 흑색선전은 결국 주변부 유권자를 멀어지게 하며 지지를 잃는 역효과를 낳는다. 그러나 이는 유권자가 알아차릴 때나 그렇다.
■선거 기간 유권자들의 정치적 기억은 6주일 정도 지속된다고 한다. 그 이상 가는 쟁점들은 잊혀 지거나 다른 문제가 새로이 기억을 차지한다. 선거가 막바지에 이를수록 첨예한 대립 끝에 변별력을 가진 소수의 주요 쟁점들로 압축되기 마련이다.
한국사회과학 데이터센터가 총선이나 대선 직후 실시하는 설문조사자료는 한국의 정치학자들이 선거를 연구하는 데 활용되는 중요한 자료로 꼽힌다. 이 센터가 지난 16대 대선 조사에서 유권자들에게 영향을 끼친 막바지 요인들로 삼은 중요한 쟁점들은 후보단일화, 철새정치인, 국정원 불법도청, 반미, 행정수도 이전 등 7개였다.
■이 자료를 토대로 16대 대선의 쟁점을 분석했던 인천대 이준한 교수는 지지후보를 결정토록 한 쟁점으로 후보단일화, 철새정치인, 행정수도이전 등 세 가지가 가장 통계적으로 의미 있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 쟁점들은 2002년 당시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11월 27일 무렵의 대표적 공방들로, 여기서 ‘병풍(兵風)’으로 불렸던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아들의 병역 문제는 제외돼 있다. 병풍은 그 해 5~6월부터 민주당 노무현 후보 진영이 김대업씨를 주역으로 내세워 집중제기한 대형 네거티브 전략이었다.
■한나라당이 제기한 소송에서 얼마 전 대법원의 확정판결은 병풍공세가 근거를 갖지 못한 것으로 판명지었다. 사법 판단으로 내려진 이 결론은 한나라당이 분통을 터뜨릴 충분한 이유가 된다. 병풍이 유권자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을지는 누구나 안다.
한국사회과학 데이터센터의 조사 대상 기간 이전에 병풍의 네거티브 효과는 이미 선거에 깊이 반영돼 있었을 것으로 봐야 한다. 어느 정도일지 정확한 계측은 어렵다. 다만 소송의 원심은 판결문에서 각 여론조사 결과를 들면서 “2002년 8~9월 이 후보의 지지도가 최대 11.8%까지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조재용 논설위원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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