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간 지속돼 온 저금리. 언제 금리가 오르기 시작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금융기관들에게 고정금리 대출은 그다지 달갑지 않다. 현재의 저금리를 토대로 한 고정금리 대출은 금리가 상승할 때 고스란히 금융기관의 리스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돈을 빌리는 고객들도 당장의 저금리에 현혹돼 변동금리 대출을 선호한다. 고정금리 대출에 비해서 변동금리 대출이 1%포인트 이상 금리가 낮기 때문에 미래의 금리 상승 위험을 간과한 채 당장의 저금리를 선택한다. 개인 고객들이 금융기관의 리스크를 고스란히 떠안은 셈이다.
18일 금융감독원과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 때 40%를 넘나들던 예금은행의 고정금리 대출 비중(신규 취급액 기준)은 3월 현재 사상 최저 수준인 14.6%까지 떨어졌다.
월별 편차를 감안하더라도, 지난해 2월 고정금리 대출 비중이 42.4%였으니 불과 1년여만에 3분의1 수준으로 주저앉은 것은 주목할만한 추세적 변화다. 물론 나머지 85.4%는 시중 금리 등에 연동돼 주기적(통상 3개월)으로 금리가 바뀌는 변동금리 대출이다.
변동금리 대출 선호현상은 저금리 환경에서 금융기관과 가계 고객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시중금리가 오르든 내리든 상관없이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고, 고객들은 당장 한푼이라도 줄이는 저금리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만약 시중 금리가 추가 하락한다면 이자 부담을 더 줄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하게 된다.
문제는 금리가 상승하는 경우다. 대출 금리가 1%포인트 상승하면 가계 부문이 떠안아야 할 추가 이자 부담은 2조원 이상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말 현재 은행 가계 대출 301조원 중 변동금리 대출이 잔액 기준으로도 200조원을 넘나들 것으로 추산되기 때문이다. 금융계 관계자는 “금융기관이 회피한 리스크가 고객에게 그대로 전가된 것”이라고 풀이했다.
대출 뿐 아니라 예금 측면에서도 가계의 위험은 증가하는 추세다. 정기예금 금리 등 확정금리 상품에 만족하지 못한 고객들이 채권에 투자해 실적을 배당하는 상품인 변액보험이나 수익증권에 급속히 몰려들고 있기 때문이다. 금리 상승(채권값 하락)이나 주가 하락에 따른 손실을 보험 계약자나 투자자가 부담해야 한다.
보험사의 변액보험 수입 보험료는 2003회계연도(2003년4월~2004년3월) 1년간 9,000억원 증가하는데 그쳤지만, 지난해 4월부터 12월까지 9개월 간 무려 1조9,000억원 늘어났다. 머니마켓펀드(MMF)를 포함한 투신사 수익증권 역시 지난해 45조2,000억원 수신고가 증가한데 이어 올 들어서도 5월3일까지 5조8,000억원 늘어났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변동금리 대출이나 실적배당상품의 판매 증가 자체를 문제삼을 수는 없다”며 “대신 금융회사들이 상품 판매 시 고객들에게 리스크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고 설명하도록 하고 정부 차원에서도 대국민 금융 교육을 강화해야 가계 리스크 확대를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영태기자 yt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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