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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서울에 온 검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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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서울에 온 검투사

입력
2005.05.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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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투사가 서울에 나타났다. 수많은 인파가 환호하는 화려한 콜로세움은 아니었지만 꽤 큰 레스토랑의 특설 링에서 검투사는 이종격투기라는 이름의 결투를 벌였다. 다른 점은 우리들의 검투사는 노예가 아니었다는 점, 승자와 패자 사이에는 삶과 죽음의 경계가 설정된 것이 아니라 10만원과 40만원의 보수 차이가 설정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때리고 맞는 공격과 폭력행위를 태연히‘즐기면서’식사를 하고 포도주를 마실 만큼 우리는 폭력에 친숙해져 있다. 폭력행동은 주변에 얼마든지 있지만 우리는 그것이 폭력이라는 것을 인식조차 하지 않는다.

병영에서 인분을 처벌의 도구로 사용한 것이 오래 전의 일이 아니고, 학교에서는 피해자가 자살을 할 정도로 학우를 잔인하게 괴롭히며, 교사는 학생들의 머리카락에 대해‘고속도로’를 낼 정도로 폭력적인 단속을 하고, 운동 선수들, 개그맨들 사이에도 폭행이 일상화해 있다.

나라 정책의 큰 줄기에서도 생명은 경제발전이나 국가 이익 등의 아이템보다 낮은 위치에 있다. 그러기에 지난날 베트남에 파병하여 다수의 무고한 인명을 살상했으며, 지금 미국이 이라크에서 저지르고 있는 침략ㆍ학살극을‘적절한 군사행동’이라고 칭찬하면서 이에 동참하고 있다.

폭력으로 정권을 잡아 고문과 압제를 통치수단으로 삼고 사법살인조차 서슴지 않던 박정희 정권에 대해 꽤나 많은 사람들이 그때 있었던 경제발전(대일의존과 노동탄압을 극대화한 것이었지만)을 이유로 폭력성과 패륜성을 문제 삼지 않는다.

1979년 12월 군사반란을 일으켜 아군끼리 서로 죽이게 하고 살벌한 공포정치를 행했으며 광주학살의 원인행위를 제공한 군사반란 수괴를 우리 정부는 너그러이 사면해주지 않았던가.

폭력숭상과 인명경시의 극치는 우리 민족이 광적으로 서로 죽인 한국전쟁이다. 그것은 북한의 책임이라고 하겠지만, 북한 사람들의 과오 역시 우리 민족의 과오다. 전쟁을 3ㆍ8선에서 멈추지 않고 3ㆍ8선 이북으로 북진을 결정할 때 이승만 정부와 당시 군부는 생명의 가치를 얼마만큼 생각했을까?

폭력이 일상화한 것은 분명 이유가 있다. 국토는 좁은데 인구는 많고, 욕구수준이 높은데다 경쟁이 심하다는 사회의 특성이 폭력과 공격을 부추긴다. 인구밀도가 높으면 타인에 대한 배려가 감소하고, 경쟁에서 오는 좌절은 공격 성향을 높이기 때문이다.

사나운 시어미에게 구박받은 며느리가 뒷날 사나운 시어미가 되듯이 일제와 한국전쟁과 박정희ㆍ전두환 정권의 폭력에 시달린 우리 민족은 폭력에 세뇌되고 폭력을 일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일제와 군사정권의 잔재를 말끔히 청소하지 못하고 전쟁의 상처를 완전히 치료받지 못한 것이다.

우리가 이상적인 나라로 떠받들고 있는 나라 미국은 폭력행위에 관한 한 매우 나쁜 역할모델이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한국인에게 습성화한 맹목의 숭미 사대주의성향으로 인해 우리는 미국이 저지르는 침략과 학살과 파괴행위에 대해서 관용적인 태도를 취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폭력 안에서 행복해질 수 없다. 우리 모두가 일본 제국주의, 냉전, 군사독재로 인한 폭력의 희생자들이 아닌가. 교실에서 따돌림 당해 괴로워하는 학생은 물론, 괴롭히는데 앞장서는 학생도 그리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정말 행복한 사회를 가꾸려 가려 한다면 마음속의 폭력성향을 추방하고 생명의 가치를 드높이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더이상 살인이 추억거리가 되어서는 아니 되며 주유소를 습격하는 것이 심심풀이가 되어서는 아니 된다. 남에 대한 배려, 특히 약자에 대한 배려가 평화와 행복의 필요 요소다.

천성산 도롱뇽이나 천수만 철새 같은 생태계 약자, 따돌림 당하는 학생 같은 집단 내 약자, 환과고독(鰥寡孤獨)이나 빈곤층 같은 사회 내 약자, 이라크 국민 같은 국제관계 속 약자에 대한 배려와 동정을 키워 가는 것이 우리 속에 내재한 폭력성향을 줄이는 확실한 길이다.

이동인 충남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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