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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세상/ 칸 비경쟁 부문 초청 김기덕 감독 '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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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세상/ 칸 비경쟁 부문 초청 김기덕 감독 '활'

입력
2005.05.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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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2) 이전 김기덕 감독의 작품들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거칠고 파괴적이었다. 여대생과 창녀가 역할을 바꾸고(‘파란 대문’), 목에 낚시 바늘을 들이밀거나(‘섬’) 연정을 품은 여자를 창녀로 만드는(‘나쁜 남자’) 내용을 보다 보면 가슴이 데일 듯했다.

영화 속 밑바닥 인생들이 가학적이면서 피학적인 행동을 통해 토해내는 분노는 인간 관계에 대한 모색이자 그 접점을 찾지 못함에 대한 절망의 몸짓이다. 등장 인물들이 도발적으로 세상의 금기를 우롱하는 모습은 초현실주의 회화를 연상시키는 미장센과 어우러져 독특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냈다.

밖으로 끝 모르게 폭발하던 김기덕 식 화법은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거치며 안으로 방향을 돌렸다. 원조교제를 소재로 했지만 보다 점잖아진 내용과 따사로움을 보여준 ‘사마리아’와, 두 남녀가 서로의 빈 가슴을 채워가는 과정을 빈 집이라는 오브제를 빌어 차분하게 담은 ‘빈 집’은 그가 새로운 화술에 빠른 속도로 적응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12일 개봉한 신작 ‘활’은 김 감독이 여전히 소통에 대한 주제에 천착하면서도 변화한 작품세계가 튼튼히 뿌리 내리고 있음을 감지케 한다. ‘활’은 이번 칸 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됐다.

바다 위 외로이 떠있는 배에 노인과 소녀가 살고 있다. 작은 배로 낚시꾼을 실어와 연명하는 두 사람은 혈연관계가 아니다. 낚시꾼들 사이에 떠도는 풍문에 따르면 소녀는 10년 동안 한 번도 뭍에 발을 딛지 못했고, 얼마 남지 않은 17세 생일에 노인과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다.

사뭇 ‘롤리타 신드롬’을 연상시키는 설정이지만 영화는 외설로 치닫지는 않는다. 노인은 이층 침대 위에서 잠을 잘 때 단지 아래층 소녀의 손을 꼬옥 쥘 뿐이다.

소녀를 목욕시키는 장면에선 부녀 사이처럼 묘사된다. 그러나 준수한 외모의 청년이 배에 타면서 둘 사이에 균열이 일기 시작한다. 배 밖에 전혀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안 소녀는 노인을 떠나려 하고, 수도승처럼 일상을 살아가던 노인의 가슴엔 거친 파도가 일기 시작한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주요 소재는 활과 바다다. 활은 노인이 낚시꾼들의 욕정으로부터 소녀를 지키는 무기이고, 구도하듯 고독을 달래는 악기이기도 하다. 점을 칠 때는 노인과 소녀를 이어주는 도구가 된다.

팽팽한 활시위에는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강함과 삶의 아름다움이 공존한다. 생명의 근원이기도 하지만 죽음을 상징하는 바다도 이중적 의미를 띤다. 바다는 두 사람을 외부로부터 고립시키지만 세상과 연결하는 통로이기도 하다.

감독은 침묵으로 일관하는 노인과 소녀, 비속적이며 폭력적인 단어를 내뱉는 낚시꾼들을 대비시켜 의사소통의 도구이면서도 갈등을 잉태하는 말의 이중성도 다룬다.

사물의 안팎에 정반대의 세계가 존재할 수 있다는 감독의 메시지는 극을 평면적인 갈등이나 파국으로 몰지 않는다. 노인의 영혼과 소녀가 몸을 섞고, 소녀가 작은 배를 타고 청년과 떠나는 장면은 파편적인 인간관계가 아닌 득도(得道) 수준의 소통을 보여준다.

서울 씨너스G극장과 부산극장에서 첫 선을 보인 ‘활’은 18일까지 1,299명의 관객들을 만났다. 19일 씨너스 대전, 26일 대구 한일극장, 6월2일 광주 무등극장에서 순차적으로 개봉할 예정이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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