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보컴퓨터의 몰락은 중국 및 동남아시아 제품과의 저가 경쟁, PC산업의 성장성 둔화 등으로 벼랑에 내몰린 국내 중견 PC업체의 현실을 보여준다.
삼보컴퓨터는 삼성전자, LG전자와 함께 국내 3대 컴퓨터 메이커로 불렸으나 지난해 하반기부터 대만 컴퓨터 업체의 초저가 공세에 밀리기 시작했다. 삼보컴퓨터 관계자는 “컴퓨터 산업은 마진이 거의 없는 사업구조로 돌아선지 오래”라며 “중국, 대만 업체 등의 초저가 공세에 맞서기가 사실상 불가능했다”고 말했다.
세계 PC시장은 2001년부터 마이너스 성장세를 보이고 있고, 특히 PC산업의 중심이 데스크톱에서 노트북으로 이동하면서 삼보컴퓨터의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노트북은 데스크톱에 비해 더 높은 수준의 기술력과 브랜드 마케팅이 필요해 연구개발 및 마케팅 비용이 많이 든다.
삼보컴퓨터는 2003년 하반기부터 자체 브랜드 사업을 강화하고 주문자개발방식(ODM)의 해외수출을 줄이는 등 구조조정에 나섰지만 오히려 비용 증가에 따른 유동성 위기를 초래했다. 특히 전체 매출의 70% 안팎을 차지하던 ODM 매출이 지난해 말 절반 이하로 급감하면서 치명타를 맞았다.
이 달 초 코스닥 시장에서 퇴출된 현주컴퓨터의 몰락 원인도 다르지 않다. 현주컴퓨터는 2000년 매출액이 3,300억원에 달하는 등 ‘한국의 델컴퓨터’로 불렸으나 동남아시아 제품과의 저가경쟁이 격화하면서 수익성이 악화했다. 현주컴퓨터는 2001년부터 뒤늦게 노트북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오히려 몰락을 재촉하고 말았다.
2003년 나래앤컴퍼니, 로직스, 컴마을에 이어 올해 현대멀티캡, 현주컴퓨터과 함께 삼보컴퓨터마저 무너지자 국내 PC업계의 공멸 위기감은 더 높아지고 있다. 현재 중견 PC업체로는 주연테크, 대우컴퓨터 등 2개사 정도만 명맥을 유지하는 상황이다. 업계 관계자는 “저가 모델은 중국, 대만에 맡기고 고급 브랜드 제품으로의 전환이 올바른 방향이지만 중소업체가 단기적 유동성 위기를 버텨내기 쉽지 않다”며 “향후 국내 컴퓨터 시장은 자본력과 기술력을 가진 대기업과 외국계 전문업체가 유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렇다고 삼성전자 LG전자 등 대기업이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LG전자 관계자는 “IBM이 수익성 악화로 PC사업 부문을 중국 레노버에 매각했고, 칼리 피오리나 전 HP 회장이 PC업체 컴팩 인수의 후유증으로 최고경영자 자리에서 물러났다”며 “전반적인 PC시장의 불황으로 대기업도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삼보컴퓨터가 증시에서 퇴출될 경우 이 회사의 주식 대부분을 소유한 개인투자자들의 피해가 우려된다. 삼보컴퓨터의 지난해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지분 5% 미만의 소액주주 비율이 90.28%, 법인이 아닌 소액 개인주주 비율이 87.6%나 돼 자칫 ‘개미’들이 큰 손실을 입을 수 있다.
이민주 기자 jm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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