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신군부에 의해 강제로 땅을 빼앗긴 한 사업가가 25년만에 국가로부터 배상을 받게 됐다.
서울고법 민사25부(서기석 부장판사)는 17일 송모(78)씨가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9억8,000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부산에서 고철 도매회사를 운영하던 송씨는 80년 8월 난데없이 들이닥친 계엄사령부 수사관에 의해 보안부대 지하실로 끌려갔다. 서슬이 퍼렇던 시절에 구속영장도 없이 붙잡힌 송씨는 16일 동안 뇌물을 준 적이 있는지, 세금을 포탈한 사실이 있는지 등을 조사 받았다. 수사관들은 송씨의 혐의를 밝혀내지 못하고도 “탈세로 수억원의 부당이득을 얻었으니 부정축재한 재산 중 12억원을 국가에 헌납하라”고 강요했다.
12ㆍ12 군사쿠데타, 5ㆍ18 광주민주화운동 유혈진압 등 신군부의 행태를 지켜봤던 송씨는 재산헌납을 거절할 경우 자신이나 가족이 어떠한 피해를 볼 지 모른다는 생각에 땅을 헌납하기로 했고, 필요한 서류 일체를 제출하고서야 풀려났다.
송씨는 89년부터 땅 찾기에 나섰으나 이미 땅은 국가를 거쳐 다른 사람들에게 넘어간 뒤였다. 송씨는 “당시 국가와의 증여계약은 강제로 이뤄진 것인 만큼 무효”라며 땅의 최종 소유자들을 상대로 소유권이전등기 말소 소송을 냈지만, 번번히 패소했다. 최종 소유자들은 강제헌납된 땅인 줄 모르고 국가와 정당한 계약을 통해 땅을 취득했기 때문이다.
결국 송씨는 2003년 2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하지만 1심 법원은 국가의 잘못을 인정하면서도 손해배상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원고패소 판결했다. 적어도 송씨가 증여의사를 취소한 89년 이후 5년 이내에 소송을 제기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그러나 “국가가 다른 사람들에게 토지를 넘겨주는 바람에 소유권이전등기 말소가 불가능하게 된 사실이 인정된다”며 “땅의 소유권 분쟁 판결이 확정된 2000년 6월을 손해배상청구권의 발생시점으로 봐야 한다”고 판시했다.
김지성 기자 j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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