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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병 주고 약 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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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병 주고 약 주고

입력
2005.05.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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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정책이 때로는 앞뒤가 안 맞는다는 생각도 들지만 워낙 윗분이 강경하다 보니…”

사석에서 만난 한 고위 공무원의 말이다. 그는 최근 쏟아져 나온 부동산대책에 다소 부적절하거나 과잉 대응한 부분이 있다고 수긍했다. 기존 정책과 상충되거나 일부 위헌적 요소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지만, 국정 최고 책임자의 의지가 워낙 강해 밀어붙일 수밖에 없었다는 얘기다.

대통령이 부동산 투기 근절에 대한 강한 의지를 갖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투기를 잡고 집값을 안정시키자는 데 반대하거나 시비를 걸 일도 아니다.

문제는 투기를 잡겠다면서 한 쪽으로는 투기적 환경을 부추기는 정부의 ‘병 주고 약 주고’식 이중적 행태다. 행정중심도시 이전 계획으로 온 나라를 들끓게 한 게 정부였다. 당연히 충청권에 투기의 광풍이 불었고 땅값이 춤을 췄다. 그런데도 정부는 기업도시와 혁신 클러스터 건설, 공기업 지방이전계획을 잇달아 발표했다.

지난 해 10ㆍ29대책으로 안정기에 들어서던 전국의 부동산 시장은 정부가 쏟아낸 국토개발계획으로 가쁘게 달아 올랐다. 그럴 때 마다 국세청을 비롯한 정부 부처들은 일제히 칼을 빼 들고 투기 단속에 나섰다. 그러나 이미 오른 땅값은 잠시 주춤하며 숨 고르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땅값이나 집값이 이전 가격으로 떨어졌다는 소식은 들어 본 적이 없다. 전국이 개발현장으로 변하면서 산간 벽촌까지 돈 바람이 불고 있는 판에 투기를 잡는다는 정부의 호통이 먹혀 들 것 같지가 않다.

현재 개발 중이거나 개발이 예정된 사업의 규모는 전국적으로 130여 개 2억7,000만평으로 서울시 면적의 1.5배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 멀쩡한 사람도 돈만 있으면 어디든 땅을 사두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온 국토가 개발의 황토 바람에 휩싸여 있는 형국이다.

부동산 대책의 초점이 지나치게 ‘강남 때려잡기’ 에 맞춰져 있는 것도 문제다. 강남 재건축 아파트를 온 부처가 나서 기를 쓰고 막고 있는 것이나, 강남의 집값이 조금만 오를 기미가 있으면 곧바로 반 시장적인 대책을 내놓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기형적이다.

경제부총리는 지난 주 정례 브리핑에서 "최근의 부동산 정책은 불건전한 부동산 경기를 잡자는 것이지 건전한 부동산 경기를 죽이자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강남의 주택 값이 오르는 것은 불건전하고, 기업도시나 행정도시 건설로 인한 전국적인 땅값 상승은 건전하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는 발언이다.

정부가 올린 부동산값은 건전하고 개인이 이득을 보는 집값 상승은 불건전하다는 반 자본주의적 발상도 희한하지만, 얼마나 올라야 ‘건전한’ 상승인지 그 구분의 잣대도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정부가 정말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키겠다는 정책목표에 충실하려면 섣부른 국토개발계획은 자제하거나 미뤄야 한다. 국회의원 재ㆍ보궐 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의도를 지닌 개발계획까지 만들어내는 편의주의적 사고로는 결코 부동산 투기를 잡을 수 없다.

임기 내에 부동산투기를 반드시 근절시키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는 바람직한 것이다. 그러나 투기 근절의지 때문에 불필요하게 건설경기를 침체 시킬 필요도 없는 일이다.

부동산가격안정은 정부의 고강도정책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 과거의 교훈이다. 시간을 두고 시장원리에 따라 순리대로 해결하려는 자세야말로 부작용을 막는 진정한 부동산 대책일 것이다.

이창민 산업부장 cm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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