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식 민주주의가 뿌리내리기 어렵다던 중동에서 여성참정권 보장으로 대표되는 민주화를 위한 실험과 변화가 이어지고 있다.
쿠웨이트 의회는 16일 여성에게 참정권을 인정하는 선거법 개정안을 35대 23로 가결했다. 이로써 가장 보수적인 왕정국가인 사우디아라비아가 중동에서 여성 참정권을 제한하는 유일한 나라로 남게 됐다. 바레인, 오만, 카타르 등 걸프국가들은 2~3년전 허용했고, 이집트와 시리아에선 이미 여성 의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쿠웨이트의 여성참정권 인정은 올들어 중동에 부는 민주선거 바람의 영향으로 분석된다. 중동에선 1월9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선거, 1월30일 ‘퍼플 혁명’으로 불리는 이라크의 제헌의회 총선, 2월10일 사우디의 사상 첫 지방의회 선거가 치러졌다. 또 레바논에선 ‘백향목 혁명’이 일어났고, 이집트에서도 자유선거와 야당후보의 대선출마를 요구하는 시위가 거세지고 있다.
남성 우위의 이슬람 원리주의에 반대하는 여성들이 분홍색 옷을 입는 ‘핑크 혁명’이 일어난 이란에선 6월에 대선이 예정돼 있다. 1,010명이 난립한 대선 후보들 중 여성 후보도 89명이나 된다.
그러나 사우디 등 중동의 집권자들은 미국의 지지를 받고 있는데다 여성을 억압하는 전통과 법 제도의 독소조항을 남겨두었기 때문에 이 같은 민주화 바람이 곧바로 정권교체나 완전한 남녀평등으로 이어지기는 어렵다.
쿠웨이트의 경우도 선거법에 교묘한 독소조항을 삽입한 사례다. 쿠웨이트는 그동안 여성들에게 에너지ㆍ교육ㆍ외교 분야에서 고위직 진출을 허용했지만, 군인과 경찰을 제외한 21세 이상 남성에게만 투표권을 인정해왔다.
선거법 개정으로 모든 여성이 등록하면 여성 유권자가 기존의 남성 유권자 13만9,000명 보다 많은 2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1999년 이후 이번 개정안을 수 차례 부결시켰던 이슬람 보수진영은 개정선거법에 “여성들이 샤리아(이슬람 율법)를 준수해야 한다”는 부속조항을 삽입, 법률적 의미에서의 남녀평등을 무산시켰다.
이태규기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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