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덕 감독님에 대해 전혀 몰랐어요. 그런데 제 영화를 보고 교수님들이 자꾸 ‘김기덕 좋아하냐?’고 물어보는 거에요. 느낌이 비슷하다고. 그래서 ‘섬’을 처음 봤고, 그날 이후 김기덕 감독처럼 되는 게 저의 목표가 됐습니다.”
나이가 좀 많긴 하지만 일단 그를 ‘김기덕 소년’으로 부르기로 했다. 그가 스스로도 마음에 들어하는 호칭이다. 김기덕을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미국에서 프랑스 칸까지 날아왔을 정도로 그의 영화에 푹 빠져 있는 전재홍(29)씨다. 뉴욕 필름아카데미 학생인 그는 지난해 9월 영화를 시작해 이제 두 편의 독립영화를 만든 게 경력의 전부다.
하지만 그의 성장속도는 놀랍다. 단돈 200달러를 들여 완성한 첫번째 단편영화 ‘칼라스(Colors)’가 미국 독립영화 전문배급사인 ITN의 눈에 띄어, 칸 영화제 단편 필름마켓에 소개된 것이다. 칸 영화제를 찾은 전세계 영화 수입담당자에게 자신의 영화를 선보이는 영광을 얻었지만 그는 “사실 내 영화가 얼마나 수출될 지는 관심이 없다”고 한다. “칸에 오면 김기덕 감독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마냥 들떴죠.”
전씨는 고1 때 미국으로 이민 가, 맨하튼 음대에서 성악을 전공했다. 영화를 시작한지는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그 짧은 기간, 데뷔작 ‘칼라스’와 장편 ‘까페’(Cafe)를 완성했고 벌써 또 다른 2편을 구상중이다. 빨리 찍기에 능한 것은 김기덕 감독과 매우 닮았다.
“교수님이나 독립영화 관계자들은 늘 한국의 김기덕 감독에 대해 이야기 하고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은 DVD 대여점에서 2주는 기다려야 겨우 빌려 볼 정도로 미국에서는 대단한 평가를 받고 있어요. 그런데 이상한 건 한국 관객들이 그의 영화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죠.” 그는 김기덕 예찬은 끝이 없었다. “한국에서 그는 기괴한 사람처럼 인식돼 있지만 저는 그의 영화에서 독특한 맛이 느껴져서 좋아요. 마치 피카소의 초기작과 후기작이, 스타일은 다르지만 그만의 빛을 뿜어내는 것처럼요.”
김기덕 영화를 그림에 빗대어 말한 그는 김흥수 화백의 외손자이기도 하다. 배급사는 그의 영화가 필름마켓에서 상영되는 20일을 전후해 짧게 칸을 방문하라고 했지만 그는 용돈을 털어 11일 칸으로 왔다.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에 초청돼 12일 상영한 김 감독의 신작 ‘활’을 보기 위해서 였다.
시사회가 끝난 후 그는 영화가 상영된 클로드 드뷔시 극장 앞에서 거짓말처럼 김 감독과 딱 마주쳤다. “사실 지난해 말, 외할아버지가 김 감독님을 아신다기에 전화번호를 알아봐 달라고 해서 전화를 드린 적이 있어요. 허둥대며 ‘감독님 팬입니다’라고 말하고는 끊었었는데, 저를 기억하시더라구요. 뛸 듯이 기뻤습니다.”
그는 인터뷰에 너무 기쁘게 응했다. 이유는 이랬다. “김기덕 감독님께 저라는 존재를 알리고 싶어요. 그분 아래서 일하는 게 소원이에요. 이렇게 기사가 나가면, 김감독님이 저를 확실하게 기억해 주지 않을까요?”
칸=최지향기자 mist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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