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일한 사람은 잘 살게 되고, 놀고먹는 사람은 못 살게 되어야 그 사회를 건강한 사회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징후가 최근 여러 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경제위기 직후 급격히 높아진 빈곤은 조금씩 감소 추세를 보이다가 최근에 와서 다시 증가하고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참여정부 직전인 2002년도의 경우 최저생계비를 기준으로 하는 절대빈곤율이 5.15%였는데 2004년도에는 6.53%로 증가하였다. 중위소득 50%를 기준으로 하는 상대빈곤율의 경우는 2002년에는 9.07%였다가 2004년에는 11.20%로 증가하였다.
최근의 빈곤율 상승은 실업률이 낮아지고 있는 시기에 발생한 것이기에 그 심각성이 더 크다 하겠다. 이는 근로빈곤층이 증가했음을 의미한다. 즉, 일을 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계층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참여정부가 그동안 추진한 대책의 골격은 첫째 근로소득보전세제(EITC)의 도입계획, 둘째 근로연계복지의 강화, 셋째 긴급지원 관련대책, 넷째 차상위계층(준빈곤층)에 대한 개별급여 확대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정부 대책의 방향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동의할 수 있지만, 그 속도와 우선순위, 구체적인 접근법에 있어서는 문제가 있다.
첫째, 사람들이 일을 하지 않아서 빈곤해진 것이 아닌데 참여정부는 지나치게 일을 시키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200만 명에 달하는 비수급 빈곤층의 절반가량은 노인과 장애인, 아동 등 근로무능력자로만 구성된 가구의 사람들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최저생계비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소득으로 살아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급자로 선정되지 못하고 있는데, 가장 큰 이유는 비합리적인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이다. 참여정부는 부양의무자기준 개선을 중심으로 하는 기초보장법 개정을 더 이상 미루지 말아야 할 것이다.
둘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을 일하도록 유인하고 일할 기회를 주어 스스로 생계를 유지하게 하고 더 나아가 빈곤에서 탈출하게 하는 만드는 정책방향은 바람직할 수 있다. 하지만 저임금, 비정규직 노동자를 양산하는 결과를 초래하지 않아야 하고, 일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예산이 집중되어 오히려 일할 수 없는 계층을 더 소외시키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
서구 선진국의 경우 최근에 와서 근로빈곤문제 등으로 인해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으로 전환하는 흐름을 보이고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소득보장정책을 바탕으로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소득보장정책을 방기한 채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셋째, 정책 변화에 맞는 적정한 인력과 예산을 빨리 갖추지 못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우리 정부보다 인력규모가 작은 국가는 한나라도 없다. 재정분권화 등의 이유로 신규 복지인력 채용이 늦어지고 있고, 총괄예산제 등의 이유로 시급한 빈곤정책 예산이 필요한 만큼 확충되지 못하고 있다.
경제성장을 위해 정부가 취한 경제정책, 노동정책, 임금정책 등으로 국민의 소득격차가 더 벌어지게 되었다면 조세정책이나 복지정책을 통해 그 격차를 되돌려 놓아야 하는 게 당연한 이치이지만 정부는 그러한 점에 대단히 소홀한 듯이 보인다.
정부 자료를 보면 OECD 주요국의 조세 및 사회보장제도의 소득불평등 개선효과는 41.6%에 이르나 우리나라는 2000년 4.5%에 불과하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사회보장총예산의 비중은 OECD가입국가중 하위권에서 벗어나기는커녕 오히려 최하위로 밀려나고 있다.
남은 참여정부의 기간 동안 일할 수 없어서 가난한 사람과 일을 해도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획기적인 정책변화가 있어서 자살 등과 같은 심각한 사회문제가 줄어들기를 기대한다.
허선 순천향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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