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댕은 체코의 프라하를 ‘북쪽의 로마’라 불렀다. "체코는 동유럽이 아닌 중부 유럽"이라며 강한 자부심을 표출하는 체코인들. 구속 받기 싫어하는 보헤미안의 자유주의적 정신은 세계적 건축 문화를 낳았고, 낭만적이고 창의적 정신 덕에 세계적 음악가들이 나왔다.
체코 제1의 도시, 중세가 살아있는 프라하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프라하성이다. 시내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세워졌다. 9세기에 처음 세워지기 시작해 화재와 전쟁 등으로 1,000년의 시간이 지나 완성된 성이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지기 시작해 14세기 고딕 양식, 16세기 르네상스, 18세기 바로크 양식을 거쳤다. 중세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의 건축 양식을 집대성한 건물이다. 1918년까지 역대 체코 왕들의 왕궁으로 쓰였고 92년까지는 대통령궁이었다.
구 시청사의 탑은 프라하의 전망대다. 붉은 벽돌색 건축물이 빽빽이 들어선 시가지가 역사의 위엄을 보여준다. 구시청사 시계탑도 구경거리다. 예수의 12제자 조각 인형이 이 곳 명물로, 매시 정각을 알려준다. 정각이 되면 맞춰 이를 보려는 관광객들로 북적거린다. 성의 뒷문을 나서면 황금 소로로 이어진다. 16세기 말에 형성된 황금 소로는 프라하에서 가장 예쁜 거리로 알려져 있다. 이 작고 좁은 골목을 따라 늘어선 집 중에는 카프카가 살던 곳이 있다. 그는 거기서 ‘성’을 집필했다.
서울에 한강이 있고 파리에 세느강이 흐른다면 프라하는 블타바강이다. 이 강을 건너는 다리 중 최고의 걸작이 바로 카를교다. 12세기 목조 다리로 지어졌다가 홍수로 무너졌고, 다시 14세기 지금의 석조 다리로 태어났다. 다리는 골격뿐만 아니라 그 위를 장식한 조각 역시 화려하다. 17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유명 작가들이 만든 30개의 조각상이 이어져 있다.
카를교를 건너면 신시가지다. 바츨라프 광장은 그리 넓지 않지만 볼거리가 많은 곳. 원래 말 시장이었다. 지금은 호텔과 레스토랑, 명품 상점들이 즐비한 거리로 변했다. 1968년 소련에 대항했던 ‘프라하의 봄’ 현장이었고, 1989년 하벨 대통령이 주도한 벨벳 혁명의 중심이 되기도 했던 곳이다. 강 위를 운항하는 유람선에 올라 바라보는 시가지 풍경도 근사하다. 유난히 탑이 많아 ‘백탑의 도시’라 불리는 이유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프라하는 예술의 도시다. 교향시 ‘나의 조국’을 작고한 스메타나와 ‘신세계 교항곡’의 드보르자크를 낳은 곳이 체코다. 또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가 최초 공연됐던 곳이 프라하 극장이라고 한다. 프라하 인근의 체스키 크루믈로브는 체코에서 유네스코 문화도시로 가장 처음 선정된 곳으로 중세의 고풍스런 정취를 마을 전체가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카를로비 베리 온천은 탄산 알칼리 성분이 풍부해 소화기 계통 질환에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괴테, 베토벤, 브람스 등이 요양을 했던 곳이다.
대한항공이 작년 5월부터 프라하까지 월, 목, 토요일 등 주 3회 왕복 직항하고 있다. 프랑크푸르트나 파리 등지를 거쳐야 했던 과거에 비해 5시간 정도가 빨라졌다.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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