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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국적포기, 이유를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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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국적포기, 이유를 생각하자

입력
2005.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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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 의무를 마치지 않고는 국적을 포기할 수 없도록 한 국적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후 그 법이 시행되기 전에 국적을 포기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 외국에 살고 있는 이중 국적자들도 국적 포기를 하려고 몰려들어 로스앤젤레스 등의 한국 공관은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라고 한다.

국민의 반응은 개탄 일색이다. 병역 의무를 피하려고 국적 포기 신청 창구에 줄을 서 있는 청소년과 그 부모들에 대한 멸시도 만만치 않다. 병역 때문에 국적을 포기한 사람에 대해서는 국적 회복을 영구히 불허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여론재판 식의 대응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제 사태를 냉정하게 정리해야 한다. 법적인 문제와 윤리적인 문제를 구분하고, 법의 악용은 막되 보복을 해야 한다는 등의 감정적인 대응은 피해야 한다.

국적 선택의 자유는 법으로 보장된 것이다. 누구든 다른 나라의 국적을 취득할 수 있고, 또 법에 따라 한국 국적을 회복할 수도 있다. 그러나 병역 등을 피하겠다는 분명한 의도로 국적을 포기했다면 당연히 윤리적인 문제가 따른다. 또 일단 병역 등을 피하고 나서 적당한 시기에 국적을 회복하려 한다면 법의 악용을 막는 조치가 당연히 필요하다.

이번 사태에서는 국적 포기자의 99%가 20세 미만의 남자일 만큼 병역 기피가 절대적인 이유다. 그들의 부모는 교수와 상사 직원이 80% 이상이고, 공무원도 몇 명 있다. 그들이 이중으로 갖고 있던 국적은 미국이 96%로 집계됐다.

그들은 대부분 사회지도층이거나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계층이다. 많이 배우고 돈 있는 사람들일수록 공동체 의식이 약하고, 이기주의가 심하고, 도의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비난이 쏟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병역은 남북이 대치 중인 상황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한 국민의 의무다. 안보의 중요성을 그 누구보다 중시하는 가진 계층에서 아들을 군에 안 보내려고 국적 포기까지 시킨다면 도대체 누구에게 안보를 책임지라는 건가. 남의 아들들만 군에 나가 싸우라는 건가.

자녀에겐 엄연히 국적 선택의 자유가 있는데, 자녀 때문에 부모가 비난받거나 불이익을 당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병역 기피가 국적 포기의 목적이 아니고 다른 중요한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처럼 국적 포기의 이유가 명백한 경우라면 적어도 그 부모가 공직을 가져서는 안 된다. 다른 직업은 몰라도 국민의 세금으로 녹을 먹는 자리는 안 된다.

법의 악용을 막는 조치도 당연히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국적 포기자들에게 국내 대학의 편입학을 불허하고, 의료보험 등 모든 권리를 박탈하겠다는 등의 주장에는 위헌적인 요소가 없는지 따져봐야 한다. 새 국적법 제정 당시에도 반론이 있었던 것처럼 국적 논란이 지나치게 폐쇄적으로, 감정적으로 가서는 안 된다.

이번 사태의 핵심은 개탄이나 보복이 아니다. 왜 국적 포기를 하는지, 왜 이중 국적을 가지려는지, 그 이유를 파악하고 개혁하는 것이 바로 핵심이 돼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원정출산까지 하면서 자녀에게 이중 국적을 갖게 하는 이유는 교육과 병역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 두 가지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

이중 국적자들은 국적을 버림으로써 그 부담에서 해방되지만, 대한민국 국민은 그 부담을 고스란히 견뎌낼 수밖에 없다. 병역만 해도 근무 기간이나 근무 형태 등에서 개선할 여지가 많다. 젊은이들이 가장 중요한 시기에 학업과 생업을 중단하고 군에 가야 하는 것은 심각한 부담이다. 그들의 재능과 시간의 손실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선거 공약으로 근무 기간 단축을 내세우는 정도가 아니라 병무 행정 전반에 대한 대대적인 검토와 개혁이 있어야 한다.

군 훈련소에서 훈련병들에게 인분을 먹게 했다는 엽기적인 사건은 상징적인 사건이다. 군은 일개 지휘관에 의한 사고일 뿐이라고 강변하지만, 이런 분위기에서 그 누가 군에 가고 싶겠는가.

국적을 버리겠다는 사람들은 보내면 그만이다. 그러나 국민에게 고통을 주는 문제들이 있다면 반드시 고쳐야 한다. 떠나고 싶을 만큼 ‘괴로운 나라’여서는 안 된다. 이번 사태를 병무 행정 개혁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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