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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게 보내는 편지] 내 영혼의 벗 아우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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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에게 보내는 편지] 내 영혼의 벗 아우들에게

입력
2005.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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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남매 가운데 막내로 태어나, 맏이에게 시집가 동생이 여럿 생겨 얼마나 좋았던가! 그러나 그런 가족의 동생만 사랑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환갑이 된 즈음부터 깊이 체험할 수 있게 되었으니, 나는 늘 늦깎이인 모양이다.

늙은 ‘언니’와 ‘아우’들 사이는 정말로 각별하다. 친정엄마에게 못하는 이야기를 털어놓는 아우들, 그래서 영혼의 엄마로 불리는 감격은 아마 짐작하기 어려울 것이다. 아무런 조건 없이 인정받고는 눈물로 뒤범벅된 환한 얼굴을 깊이 사랑하는 언니가 되었다.

해마다 아이들이 있는 영국에서 여름방학을 보내면서 아우들에게 엽서를 쓰는 것이 연례 행사였다. 가자마자 엽서부터 사고 조용히 앉아있을 여유만 생기면 기차 안이든 미술관 커피숍이든 주소록을 꺼내 한 사람씩 얼굴을 떠올리며 써보냈다.

그런데 연금생활자가 되고 지난 두 해 영국에 가지 못했다. 그 사이에 아우가 된 ‘순’이는 엽서 받았던 사람들의 자랑(?)섞인 이야기를 듣고 엽서받기가 소원이 되어버렸다. “여비를 마련해서 왕언니를 보내드려야 한다”고 하니 ‘순’이가 받을 엽서는 너무나 비싸다(다행히 ‘순’이는 가난하다). 그래! 이렇게 풍경사진이 박히지 않은 엽서를 쓰마.

네가 내 아우가 된 것을 얼마나 하나님께 감사드리는지 아마 너는 모를 게다. 여성들의 마음 건강을 위한 뜻을 같이 할 자매가 된 것을 감사한다. 나에게는 너무나 익숙해 그냥 지나칠 성경이야기가 네 마음을 통해 새롭게 읽혀지는 덕에 보석같이 빛나게 해주니 고맙다.

6년 가까이 거의 매일 얼굴을 대하는 ‘미’야, 남들은 ‘버선 속이라 뒤집어 보일까’ 하지만 너의 마음은 알알이 다 비쳐보여 귀엽다. 남다른 ‘미’를 이해 못하는 ‘범생’들에게 꽤나 어려운 존재이기도 했지만 알고 보면 아이같은 마음인 것을!

일하며 저녁학교에 다니느라 힘들겠지만 그 재미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걸?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좀체 끝이 나질 않아 이야기 꺼낸 걸 후회할 정도이니 말이다.

우리의 시인 ‘선’이에게 할 말은 간단치 않구나. 누구보다 치열하게 삶을 사랑하기에 아픔도 많지만 감격도 남다른 걸 알기에 네가 소중하지. 고비마다 펴내는 시는 다른 아우들에게 얼마나 귀한 교본이 되고 있는지! 멀리 있는 돌고래 ‘애’의 심금을 울리고, 마음을 좀체 드러내려 하지 않는 ‘정’의 마음이 눈물의 시로 태어나도록 하지.

두 아이를 잘 키우고 있는, 꽃보다 아름다운 ‘경’, 마흔이 넘어 임신해 고민하다가 “나도 우리 어머니 마흔 여섯에 낳으셨다”고 부추겨 귀한 셋째를 낳은 ‘희’, 최근 산부인과 의사 잘못 만나 마음과 몸 상하도록 고생한 ‘연’, 힘들게 그러나 자기를 잘 살리고 있는 ‘영’, 다섯 살에 돌아가신 친정엄마로 나를 둔갑시킨 ‘원’, 나만 따라다니겠다면서도 실은 누구보다 훨훨 나는 ‘형’, 젊음의 고민에 찬 ‘화’, 온갖 재주를 가지고 힘차게 섬기는 ‘지’, 바닷가에서 늘 호흡을 같이하는 ‘경’, 걸어 다니는 종합 병원이라면서도 때 낀 비누접시까지 말끔히 해놓는 ‘재’와 자매, 파리에서 ‘큰언니운동’하면서 내 혈압약을 챙겨주는 ‘란’, 혼자 되어서도 두 아들과 참하게 사는 ‘숙’, 공부에 남다른 끼를 가진 ‘은’, 공주 ‘남’, 시원스런 ‘지’, 그리고도 ‘하’ ‘연’ ‘형’ ‘일’…. 우리 서로의 사랑을 담기에 엽서가 너무 작구나. 여기 쓰지 못한 사연까지 따뜻한 입김으로 날려 보내며. 언니 은희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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