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15일자로 불법 대선자금 관련자 12명 등 경제인 31명을 특별사면함에 따라 참여정부에서도 사면권이 남용되고 있다는 비난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이들 중 일부 인사는 판결문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에 면죄부를 주어 법의 엄정함을 대통령이 스스로 해치고 있다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다.
◆ 사면 배경 = 이번 특별사면에 대한 정부의 논리는 ‘경제 살리기’로 요약된다. 정치자금 제공과 분식회계 등 과거 잘못된 관행에 따라 이뤄진 행위에 대해 은전을 베풀어 경제살리기에 동참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불법 대선자금 사건에 연루된 기업인들은 대부분 정치권으로부터 먼저 자금제공을 요구받아 수동적으로 금품을 제공한 점,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으려는 사회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법무부는 설명했다.
실제로 이 기준에 따라 금융기관에 부실을 초래해 공적자금 투입의 원인을 제공한 대출사기나 개인비리 성격이 강한 횡령 등의 범죄를 저지른 경제인은 사면대상에서 제외했다. 분식회계의 경우도 불법대출 등의 추가범죄가 없는 경제인들만 사면대상에 포함했다.
◆ 사면권 남용 논란 = 하지만 정부가 불법 대선자금 사건으로 깊이 패인 국민의 실망감이 채 회복되기도 전에 특별사면을 실시한 데 대해 과거 정권과 전혀 다를 바 없다는 지적이 많다.
노 대통령은 이번 특별사면을 포함해 취임 이후 모두 4차례 특별사면을 실시했다. 노 대통령은 대선 당시 ‘150대 핵심과제’라는 공약집에서 "사면복권 행사를 엄격히 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정부는 지난 3월 ‘반부패 투명사회협약’에서 투명한 사면권 행사를 위해 사면심사위원회를 설치한다는 내용을 명문화하기도 했다. 이런 이유에서 이번 사면은 더욱 명분을 잃게 됐다. 사면 대상이 된 이학수 삼성그룹 구조조정본부장, 강유식 LG그룹 부회장, 김동진 현대자동차 부회장 등 불법 대선자금 연루 기업인들은 형이 확정된 지 아직 1년도 지나지 않았다.
사면법에 따르면 대통령은 형의 선고를 받은 자에 대해 법무부 장관의 건의나 국무회의 심의를 거쳐 특별사면을 할 수 있다. 사면권은 전제군주 시절의 잔재로 대통령제 하에서 일종의 특권으로 남게 됐다는 것이 학계의 통설이지만, 헌정질서가 자리 잡힌 나라에서 사면은 엄격하게 제한되는 게 관례다. 법원 판결의 효력을 일시에 소멸시키는 사면은 삼권분립의 중대한 예외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참여연대는 이날 논평을 내고 "이번 정부의 부정부패 사범에 대한 사면은 오히려 사회통합을 저해할 뿐 아니라 ‘법 앞의 평등’이라는 사회통합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을 심각하게 훼손한 것으로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다.
김영화기자 yaaho@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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