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어렵다고들 한다. 계절은 벌써 여름을 향해 가고 있는데 아직도 불황의 한파에 떨고 있는 곳이 적지않다. 정규직도 비정규직도 아닌 생활인, 연극인들은 어떨까. 은행에서는 대출기피 대상이고 4대 보험의 혜택조차 받기 힘든 그들에게 불황의 터널은 그 어느 때 어느 분야보다도 어둡고 길게 느껴질 뿐이다.
‘배고프다’는 단어가 운명처럼 따라다니는 연극인들이 스스로를 돕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한국연극인복지재단이 20일 오후 6시 서울 동숭동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출범한다. 지난해 11월 구성한 재단 설립추진위 대표는 배우 박정자(63)씨가 맡았고 송승환 PMC공동대표, 이종훈 한국연극협회 이사장, 유인촌 서울문화재단 대표, 채승훈 서울연극협회장 등 15명의 연극계 인사들이 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3년 임기의 재단 이사장도 박 대표가 내정된 상태다. "상임직이 아니라서 제가 무대에 서는 데는 큰 장애가 되지는 않겠지만, 조직하고는 거리가 멀고 이런 직함을 가진 것이 처음이라 사실 좀 낯설어요."
곁눈질 하지 않고 배우로만 살아 온 박 대표는 지난해 봄부터 복지재단 설립에 참여했다. 막 취임한 채승훈 서울연극협회장이 "서울연극인 복지재단 설립에 힘을 보태달라"고 부탁하면서부터다. 돈이 얽힌 문제라 처음에는 손사래를 쳤지만 "누가 앞서고 뒤에 서고가 아니라 모두 힘을 합칠 일인데 선생님이 꼭 하셔야 한다"는 배우 윤석화씨의 말에 자리를 승낙했다고 한다. 이후 별도로 연극인 복지 대책을 준비했던 한국연극협회와 손을 잡고 서울 지역만이 아닌 전국의 연극인을 위한 재단 설립으로 얼개를 잡았다.
이번 복지재단은 영화인 복지재단(이사장 정진우)을 본떠 준비했다. 연극 배우들의 출연료 1%와 극단, 기획사의 매표 수입 1%에다 각계의 후원금을 보태 꾸려갈 예정이다. 재단은 이 기금으로 연극인 생활 안정과 장학사업을 지원한다. 대상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60세 이상의 연극인에게 혜택을 줄 계획이다.
현재 기금은 박 대표의 후원회인 ‘꽃봉지회’가 1,000만원, 극단 자유 이병복 대표가 1,000만원, 윤석화씨가 1,000만원을 쾌척해 이미 3,000만원을 훌쩍 넘긴 상태다.
"1%가 크지 않은 수치라서 더 의미 있는 돈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서로를 위하겠다는 마음을 갖지 않으면 누구도 우리의 현실에 귀 기울이지 않아요. 지원금이 연극을 위해 평생 사신 분이나 그의 자손들이 부끄럽지 않게 생각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가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기금 목표는 아직 공식적으로 정해지지 않았지만 박 대표는 자신의 임기 중에 "10억원 정도 모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10억원이면 1년에 1억원을 사용하고 1억원은 새로 기부 받아 재단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3,000 여 만원은 아직 욕심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지만 그의 표정은 밝고 마음은 훈훈하다. 강원용 목사 박찬숙 의원 등 각계 인사들의 기부 약정 전화가 이어지고 있고, 전국의 연극과 교수들은 한 달에 만원씩 내놓기로 결의를 했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연극 무대 출신인 최민식 송강호 설경구 등 영화계 스타 3인방에 대한 부탁을 잊지 않았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고 하잖아요. 고향의 어른들, 친구들을 위해 힘있고 넉넉할 때 동참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어요." 기부 문의 전화는 (02)741-0331.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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