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봄, 진단결과 엄마는 담도암이었다. 2년 반의 투병생활. 그 고독하고 힘든 싸움을 시종 지켜보며, 야속한 운명에 자신의 무력감에 눈물마저 속으로 삭여야 했던 가족들…. "엄마의 힘없는 모습을 볼 때, 안간힘을 쓰며 치료를 받는 모습을 볼 때마다 눈물이 나오려고 했다. 나는 카메라로 눈을 가렸다."
2003년 8월 끝내 엄마는 떠났다. 고통은, 슬픔은 이제 남은 가족들의 몫이었다. 그 아픈 시간들을 당시 여고생이던 맞딸 이혜경(22·서울예대2) 씨는 렌즈 뒤에 숨어 견뎠다고 했다. 사진을 좋아했고, 사진을 공부하고 싶었던 그는, 달리 사진 찍을 시간도 여유도 없어, 엄마와 가족들의 사진으로 대입시험을 치렀고 합격했다. "마지막 선물인 듯, 엄마는 항암치료로 머리카락 하나 남지않은 모습으로 기꺼이 모델이 되어주셨어요." 그의 가족이 암과 싸우고, 엄마를 땅에 가슴에 묻은 시간의 기록들이 책으로 묶여 나왔다. 글·사진집 ‘가족’(새로운 사람들 발행)이다.
금실 좋았던 55년생 동갑내기 부부의 아픈 사랑은, 엄마의 병상 곁에서 사로잠 자는 아빠의 사진으로 남았다. "사랑하는 마음. 온전히 하나가 되는 것은 이런 게 아닐까. 사랑하는 엄마보다 아빠가 더 아파보이고, 아빠가 슬퍼 할까봐 엄마는 아픈 것도 내색하지 못하는 일." 얼음장 같은 엄마의 발에 혼신으로 온기를 전하던 발마사지, 쑥뜸…. 가족 모두가 말수 적은 A형이라고 한다. "그래서 서로에게 보이지 못한 감정과 하지 못한 말들이 있었다.… 엄마가 아파서 어두워졌던 그 분위기를 카메라를 대는 순간 걷어내면서 우린 그렇게 함께 웃고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 사진에는 아빠와, 아빠의 무릎을 베고 누워 눈부시게 웃는, 모자 쓴 엄마의 행복이 담겨있다.
사진 속 늦둥이 막내는 여섯살이다. 엄마의 약병들을 굴리며 노는 녀석이, 어느날부터 할머니께 용돈을 얻어 장난감차 안에 모으기 시작한다. "뭐하려고 그러니?" "엄마 약 사줄 거예요. 할머니, 엄마가 좋아하겠죠?" 그런 막내에게 "아픈 모습 보이는 게 미안해서, 보기만 해도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이 미안해서… 엄마는 늘 사진으로만 그리워했다." 엄마가 흙으로 돌아가시던 날, 가족사진을 챙겨왔다. "엄마, 우리 이렇게 같이 있으니 외로워 하지 마세요."
사진들에는 장례와 삼우제 49재의 모습이, 남은 가족들이 겪어내는 가망 없는 그리움과 외로움 허전함이, 또 어떻게든 견디고 이기려는 가상한 노력들이 진솔하게 담겨 있다. 1주기 기일이었던 지난 해 8월31일의 사진. 등에다 앙증맞은 천사 날개를 단 두 동생이 엄마의 무덤 앞에 앉았고, 아빠는 멀찍이서 애꿎은 잔디만 뜯고 있다.
사진은 단순히 1/500초의 순간으로 포착한 빛의 기록이 아니다. 거기에는 함께한 긴 삶이 있고, 남아 견뎌야 할 세월이 있다. 극도로 응집된 시간의, 기억의 끝에 가족이 있다.
저자 수익금은 암 환자를 위한 비영리단체에 기부한다고 한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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