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김세호 전 건설교통부 차관을 포함해 감사원이 수사 의뢰한 철도청(현 철도공사) 유전개발사업 의혹 사건 관련자 대부분을 구속함에 따라 수사는 일단 중반을 넘어섰다. 현재까지 수사에 대해 "‘의혹만 무성해 별로 나올 게 없을 것’이란 당초 예상을 깨고 검찰이 사건 실체에 조금씩 접근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 꼭 1개월 전인 지난달 12일 ‘국장급 공무원의 무리한 사업추진’ ‘단순 사기극’으로 중간 감사결과를 발표했던 감사원은 졸속감사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 철도청 비리에서 권력형 비리로?
검찰은 인도네시아로 도피한 허문석 코리아크루드오일(KCO) 대표를 제외하고 감사원이 수사 의뢰한 5명을 모두 구속했다. 이들의 입을 통해 베일 속에 가려 있던 유전사업 추진 경위도 대부분 파악했다.
우선 철도청이 유전사업을 추진하는 동안 내부에서도 상당히 반대가 많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럼에도 왕영용 철도공사 사업본부장은 사업에 반대하는 직원을 배제하고 이사회에 허위보고까지 하면서 사업을 강행했다.
신광순 철도공사 사장(당시 철도청 차장)은 산업자원부 장관을 직접 만나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 때 유전사업에 도움을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철도청이 장밋빛 전망에 눈이 멀어 과욕을 부린 건지, 아니면 청와대나 산자부 등의 사업지시가 있었는지는 아직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다.
이번 수사에서 가장 극적인 전환점은 11일 철도청장을 지낸 김세호 전 건설교통부 차관의 구속이다. 검찰은 "왕 본부장에게 유전사업 검토를 지시한 뒤 제대로 보고 받지 못했으며 결재도 하지 않았다"는 김씨의 주장과 달리, 김씨가 사실상 유전사업의 총괄 사령탑이었다고 결론지었다.
김씨는 산자부 장관의 협조를 구하고 청와대 보고를 지시했으며, 우리은행에 신속한 대출을 부탁하기도 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열린우리당 이광재 의원의 선거참모가 철도청에 유전사업을 제안했던 부동산업자 전대월 KCO 전 대표에게서 지난해 총선자금 8,000만원을 받은 사실도 수사과정에서 새롭게 밝혀졌다. 청와대 국정상황실이 지난해 11월 유전사업의 문제점을 이미 조사했으나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이후까지 보고를 지연한 사실은 검찰이 청와대 담당 직원에게 확인 요청전화를 건 뒤 불거져 나와 은폐 논란을 빚었다. 철도청 왕 본부장이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실 김경식 행정관에게 지난해 8월 유전사업 내용을 상세히 보고한 사실도 뒤늦게 드러났다.
◆ 향후 수사 전망
이제 김 전 차관이 이번 사건의 ‘몸통’인지, 아니면 청와대 등 권력 핵심부와 유전사업에 뛰어든 철도청을 연결해준 ‘고리’ 역할에 그쳤는지가 수사의 초점이다. 검찰은 김씨에 대한 영장실질심사에서 이광재 의원과의 친분관계를 추궁했다. ‘몸통’ 수사의 첫 대상이 이 의원인 셈이다.
검찰은 당분간 ‘숨고르기’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김씨가 입을 열지 않고 있고 정치권과의 연결고리로 지목돼온 허문석씨의 자진 귀국 가능성도 현재로선 희박하기 때문이다.
검찰도 이제 외압부분 수사를 위해 전열을 가다듬을 시기라고 말하고 있다. 이번 주에는 특별한 소환자가 없을 것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검찰은 나름대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박한철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사명감을 가지고 원칙대로 해나가면 아무런 허물없이 수사가 잘 풀리지 않겠냐"고 말했다.
김영화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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