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기아자동차노조의 채용비리에서부터 시작된 노조비리는 항운노련, 국민은행노조, 택시노련, 현대자동차노조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최근의 노조비리는 비리의 성격이 집행부의 조직적 비리든 일부 노조간부의 개인적 비리든 간에 비리가 ‘약자’를 대상으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그리고 비리 주체가 우리나라 노동운동을 주도하는 대공장노조의 간부와 노조 최상급단체의 최고위 지도자라는 점에서, 다른 노동문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사회적 파장과 노조 내부에 미치는 영향은 아주 크다.
또한 최근의 노조비리와는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노조재정운용 관련 부정이나 횡령 등으로 자진사퇴한 경험이 있거나, 불신임이나 자진사퇴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조직유지에 어려움을 겪은 경험이 있다는 응답이 13%에 이르며, 조합원규모가 클수록 그 비중이 높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이것은 노조비리가 예외적인 현상이 아니며 대공장 노조에서 주로 일어난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일련의 노조비리는 노조 내부의 감시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음에 따른 노조재정의 투명성 결여와 노조가 권력기관화했다는 점에도 그 원인이 있지만, 초심에서 벗어난 노조간부의 일탈을 가장 큰 원인으로 지적할 수 있다.
노조는 경제적 약자인 근로자의 권익을 보호하는데 본연의 목적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노조를 출세와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악용하거나 자기 계파만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일부 노조간부의 일탈행위가 노동운동 전체를 매도하게 만들고 있다.
이와 같은 노조비리는 노조에 대한 조합원과 일반 국민의 불신을 초래하여 노조 조직률의 지속적인 저하(2003년 말 현재 11%), 민주노총의 잇따른 대의원대회 무산, 각종 사업과 운영에서의 계파이기주의, 그리고 대공장노조의 이기주의와 맞물려 노동운동의 위기를 노조 스스로 초래하고 있다.
시장만능주의로 일컬어지는 신자유주의 하에서 노조는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주요 기제의 하나이다. 노조가 노동운동의 위기를 극복하고 노조의 결성 목적인 사회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다시 말해 노조는 노조간부 개인의 영달이나 계파이익을 위한 수단으로서가 아니라 노동 대중 전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조직으로 거듭나야 한다.
또한 비리노조간부에 대한 노조 자체의 단호한 조치와 아울러 노조재정의 투명성 확보를 위한 회계감사시스템의 정비, 특히 대공장노조의 경우에는 외부회계를 자청하는 등 노조의 자정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
노조의 자정노력이 미흡할 경우 선진국의 사례에서 보듯이 외부로부터의 개입은 불가결하다.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도 노조가 정치적·사회적으로 커다란 영향력을 갖게 되고 노조간부의 부패·전횡이 사회문제화하자 노조의 관리·운영 등 내부관계를 법적으로 규율하고 있다.
높은 신분엔 높은 도덕적 의무가 따른다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비단 사회지도층 인사들에게만 해당되는 용어가 아니다. 다른 조직에 비해 도덕성이 더욱 요구되는 대공장노조의 간부나 상급단체의 노조간부에게는 말할 나위도 없다.
최근 잇따른 노조비리는 아직까지 노조가 비리사건을 혁신과 발전의 기회로 승화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역으로 증명한다. 노조비리사건이 노동운동의 위기를 가속화시킬 것인지 아니면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을 지는 전적으로 노조의 몫이다. 노조의 획기적이고 가시적인 자정노력을 통해 더 이상 노조비리가 사회문제화하지 않기를 기대한다.
김정한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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