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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띄우는 편지

입력
2005.05.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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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바래봉은 전국 최대의 철쭉 군락지답게 많은 관광객이 방문합니다. 철쭉이 만개하는 5월 한달은 상춘객이 넘쳐난다는 표현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등산을 하면서 맛 보는 철쭉이 어우러지는 풍광은 명불허전입니다. 하지만 바래봉 여행이 그다지 개운하지는 않았습니다.

바래봉 등산로를 한참 오르니 깔끔하게 정리된 길이 나왔습니다. 길을 넓게 내고, 길 중간에 평평한 돌을 깔았습니다. 그냥 보기에도 적지 않은 예산을 들여 다듬은 것 같습니다. 행정 당국에서 여행객의 편의와 미관을 위해 배려한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산을 오르기 위해 택한 길은 신작로처럼 잘 닦인 길이 아닙니다. 등산로 가장 자리에 쳐 놓은 목책 너머로 사람 한 명이 겨우 다닐 수 있는 좁은 흙길이었습니다. 돌길이 너무 딱딱해 등산로로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까닭입니다. 등산을 즐기는 이유중에는 도시에서는 좀체 구경하기 힘든 흙길을 밟을 수 있다는 게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한참을 오르다 보니 혼자만의 선택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많은 등산객들이 잘 정리된 돌길을 외면하고 좁은 흙길을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산을 오르는 사람과 하산하는 사람이 부딪혀 난감해 하는 일이 곳곳에서 일어납니다. 참지 못한 한 등산객이 한마디 내뱉습니다. "비싼 돈 들여 왜 이 짓을 하는 지 모르겠다" 고. 지나가던 사람들마다 "맞는 말"이라며 한 마디씩 거듭니다. 여행객이 편하게 등산을 즐길 수 있도록 깔아 놓은 길이 오히려 여행객으로부터 외면 받고 있는 것입니다.

산행을 하다 보면 여행객을 위한다는 명목 아래 등산로를 깎아 계단을 만들기도 하고, 돌길을 내 놓은 곳을 더러 만납니다. 하지만 그 순간 산은 망가지고 맙니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바람은 자연을 보는 것입니다. 그도 안 되면 가장 자연에 가까운 산을.

한창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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