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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여행 - 봉화산에 철쭉 꽃불이 타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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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여행 - 봉화산에 철쭉 꽃불이 타오른다

입력
2005.05.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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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늦게 시작된 봄이 절정을 향해 치닫는다. 속도가 너무도 빨라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다. 엊그젠가 싶더니 벌써 종착역을 눈앞에 두고 있다.

매화, 벚꽃, 배꽃, 진달래로 이어지는 봄꽃 행진의 끝은 철쭉이다. 철쭉은 단연 으뜸이다. 하나 하나 뜯어 보면 그리 잘 난 것 없다 싶다가도 떼지어 피고 지는 기세를 앞 두고는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누가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던가. 개화 시기도 한 달은 너끈하다.

전남 장흥 제암산과 보성 일림산에서 시작, 어기차게 북상중인 철쭉은 경남 산청 황매산과 전북 남원 봉화산, 바래봉을 거쳐 강원 정선 두위봉과 태백산까지 불태운 뒤 빛의 축제를 마무리한다.

5월의 산하를 물들이는 철쭉은 지금 전북 남원에서 절정이다. 백두대간 끝자락께인 봉화산에서, 지리산의 새끼봉인 바래봉에서, 붉은 빛을 토해내며 숨 고르기를 하고 있다.

전국 최대 규모의 철쭉 군락지인 바래봉(1,165m)의 명성이 너무 커서일까. 봉화산(919m) 철쭉은 덜 알려진 편이다. 하지만 봉화산도 화려함에서는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규모는 작지만 산 능선을 따라 불을 지른다. 산불이 아니라 꽃불이다. 이몽룡의 가슴에 불을 지폈던 춘향의 치마가 저보다 붉었을까. 아찔하도록 현기증이 난다.

봉화산 철쭉 군락지는 치재라는 능선 일대에 몰려있다. 해발 500m안팎에 불과한 나지막한 곳이지만 엄연한 백두대간의 일부이다. 지리산 노고단, 성삼재, 정령치를 지나 수정봉, 여원재, 새맥이재, 복성이재를 거쳐 봉화산으로 내닫는 길목에 있다. 사람들의 발길을 거부해 오던 이 일대의 철쭉을 발견한 것도 백두대간 종주꾼들이었다. 10년 전의 일이다.

하지만 백두대간 자락이라고 해서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이제 봉화산 철쭉 군락지를 오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남원시 아영읍에는 능선입구까지 차량이 오를 수 있는 길이 나 있는 덕이다. 꽃불 속으로 들어 간다.

철쭉나무의 높이가 평균 2m이다. 철쭉사이로 걷는 것이 아니라 철쭉속으로 걷는다. 이 착시 현상 속에서 10분쯤 걸으면 치재로 오르는 길이다. 정상 부근에 제법 많은 등산객이 몰려 있는데, 등산로에는 사람 구경 하기 힘들다. 꽃 속에 파묻혀 있으니 당연하다. 가끔씩 꽃 사이로 사람들의 머리가 보였다가 사라진다. 정상에 오르면 상춘객도 등산객도 모두 숨바꼭질 놀이에 빠져든다.

정상에서 보는 철쭉 군락지는 말 그대로 장관이다. 만개한 철쭉이 능선을 가득 메웠다. 빈 틈을 찾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 현란함에 놀라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감탄사조차 내뱉기 힘들다. 이런 풍광을 그냥 놔둘 리 없다. 전국에서 몰려든 사진 작가들의 셔터 소리가 봄을 아쉬워 한다.

전망도 빼어나다. 높지 않은 산이지만 남원시 아영면과 장수군 번암면 일대가 한눈에 들어 온다. 보다 나은 전망을 원한다면 봉화산 정상으로 향하자. 중간 중간에 참나무 군락과 억새 평야가 반긴다. 1시간 30분 가량 걸리는 코스지만 지루할 겨를이 없다. 봉화산 정상에 서면 남으로 지리산 천왕봉, 북으로 백운산을 마주한다. 그 어디메쯤 마지막 봄의 장엄이 있다.

남원=글·사진 한창만기자 cmhan@hk.co.kr

■ 철쭉 향연 | 지리산의 막내 바래봉-붉은산, 그 품에 안기면 너도 나도 '꽃속의 꽃'

봉화산 철쭉의 붉은 기운이 사그라질 때 쯤 바래봉 철쭉 향연은 극에 달한다. 고도가 높아 봉화산에 비해 개화 시기가 일주일 가량 늦기 때문이다. 현재 9부 능선까지 불붙었다. 자고 일어나면 붉기가 더해진다. 그 현란한 꽃대궐 속으로 발을 들였다.

바래봉 등반의 시작 지점은 운봉읍 축산기술연구소 남원지소앞에 마련된 주차장이다. 이 연구소는 바래봉을 전국 최대의 철쭉 명소로 만든 주인공이다. 1971년 한국과 호주가 합동으로 면양 목장을 설치, 양떼를 방목했다. 초식 동물인 양들은 당연히 온 산을 누비며 잡목과 풀을 뜯어 먹었지만 유독 철쭉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특유의 독성 때문이었다. 짐승이 먹지 못해 버려둔 철쭉이 번성해 관광지로 변모했다는 사연이 외지인에게는 외려 재미있다.

주차장을 지나 등산로에 접어 들면 화려한 꽃잔치가 시작된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바래봉 철쭉은 그 명성에 걸맞는 색깔을 내지 못했다. 계속되는 이상 기온 때문이었다. 다행히 올해는 4~5월 기온이 높았고, 햇볕을 많이 받은 철쭉꽃의 색 선명도가 유난히 곱다. 눈이 즐거우니 발도 가볍다. 명색이 지리산 자락이지만 꽃향기에 취해 걷다 보니 가뿐하기 그지 없다.

10분쯤 오르니 갈림길이다. 오른쪽은 바래봉 아래 유일한 사찰인 운지사, 왼쪽은 등산로이다. 운지사 뒤로 정상으로 가는 지름길이 나 있지만, 철쭉을 즐기러 왔으니 굳이 빠른 길을 택할 이유가 없어 등산로를 택했다.

이윽고 쉼 없이 이어지는 철쭉 퍼레이드에 호흡마저 가빠 온다. 그러나 발 아래 운봉읍내 논에는 모내기에 한창인 농부들의 바쁜 일상만이 펼쳐져 있을 뿐.

30분쯤 걸었을까. 갑자기 경사가 급해진다. 1,100m를 겨우 넘는 지리산의 말봉(末峰)이라 조금은 우습게 생각했는데, 만만하게 볼 산이 아니다. 신발끈을 다시 매고, 배낭도 몸에 밀착시킨 뒤 정상을 향했다.

이번에는 안개가 몰려오기 시작한다. 10m앞을 보기 어려울 정도다. 나그네의 성마름을 탓하기라도 하듯 쉽게 속살을 보여주려 하지 않을 태세다. 8부 능선을 지나니 군락이 확연히 줄어 들었다. 이제 겨우 몽우리를 맺힌 꽃도 눈에 슬슬 띈다. 9부 능선에서 산정상까지는 아직 초록의 세상이다. 안개 사이로 바래봉이 나타났다. 바래봉은 승려들의 밥그릇을 엎어 놓은 ‘바리’와 닮았다고 해서 붙은 이름. 붉은 물이 급속도로 산위로 내달리고 있지만 이 곳까지 지배하지는 못했다. 그 빛깔의 찬연한 대비가 외지인에게는 그저 영롱할 따름이다.

바래봉 철쭉 군락의 최고로 손꼽히는 정상 - 팔랑치 일대는 이달 중순 이후부터 이달 말까지가 절정이다. 팔랑치에서 부운치 - 세걸산 - 고리봉 - 정령치로 이어지는 등산 코스는 사람의 마음을 달뜨게 하는 풍경의 연속이다. 철쭉 무리에서 맛보는 감동보다 몇 배 진한 감동이 밀려 온다. 가벼운 걸음으로 시작했지만 하산길의 만족감은 태산 준령이라도 종주하고 난 다음의 마음만 같다.

바래봉(남원)=글·사진 한창만기자 cmhan@hk.co.kr

■ 철쭉에 대해 알고 싶은 것들/ 꽃이 진후 잎이 나면 진달래 잎이 난후 꽃이 피면 철쭉

봄산을 수놓는 꽃에는 철쭉과 진달래가 있다. 모두 진달래과에 속한다. 영어로 진달래는 아젤리아(azalea), 철쭉은 로얄 아젤리아(royal azalea)로 부를 정도이다. 하지만 겉으로 봐서 두 꽃의 차이를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진달래와 철쭉을 구분하는 가장 흔한 방법은 꽃과 잎이 같이 피느냐의 여부에 있다. 꽃이 피고 진 다음 잎이 나면 진달래, 잎이 먼저 나고 꽃이 피면 철쭉이다. 일부 철쭉은 꽃과 잎이 같이 피기도 한다. 진달래는 양지에서, 철쭉은 음지에서 주로 자란다는 것도 차이점이다. 진달래는 꽃에 털이 있고, 철쭉은 꽃에 반점이 있다. 철쭉잎이 진달래보다 더 둥글다는 것도 비교 포인트.

계절에 따라 구분할 수도 있다. 진달래는 주로 4월, 철쭉은 5월이 만개 시기이다. 진달래가 피고 나서 연달아 핀다고 해서 철쭉을 연달래라고 부르기도 한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진달래는 먹을 수 있지만, 철쭉은 먹을 수 없다는 점이다. 진달래를 참꽃, 철쭉을 개꽃이라고 하는 데는 까닭이 있다. 봄철에 산에 갔다가 꽃을 따 먹는 경우가 많은데, 철쭉을 다량으로 먹었다가는 독성 때문에 생명을 잃을 수도 있어 조심해야 한다. 진달래와 철쭉을 굳이 비교해야 할 필요가 여기에 있다.

■ 여행수첩

●가는 길 차량을 이용, 수도권에서 출발한다면 경부 고속 도로를 타고 천안 - 논산 고속 도로를 거쳐 호남 고속 도로 전주IC에서 17번 국도를 따라 남원으로 가면 된다. 경부고속 도로에서 대진 고속 도로를 이용해 장수 IC까지 온 뒤, 19번 국도를 지나 장수군 번암면 시내에서 지지 계곡 방향으로 가면 백두대간 주능선인 복성이재와 만난다. 남원에서 올라 가려면 88고속도로 지리산 IC에서 빠져 나오자 마자 좌회전, 아영면 흥부 마을을 거쳐 짓재 마을에서 시작하면 된다. 복성이재와 짓재에서 봉화산 철쭉 군락지까지는 도보로 20분이면 오를 수 있다. 바래봉으로 가려면 운봉읍에서 용산 마을을 지나 철쭉 공원 주차장으로 가면 된다. 철도를 이용할 경우 서울역에서 전라선 남원역(063-633-7788)에 도착, 택시를 이용하면 된다. 철도 전문 여행사들이 철쭉 개화 시기에 맞춰 이달말까지 철도 상품을 5만원선에 내놓고 있다. 비타민여행사(02-736-9111), 청송여행사(02-853-7787), 보군여행사(3210-1210) 등.

●먹거리 남원은 풍류의 고장이다. 멋드러진 노랫가락과 한잔의 술에 맛있는 음식이 곁들여졌다. 지금은 노랫가락을 들을 수는 없지만 얼큰한 술과 함께 하는 한정식집이 많다. 청월장(063-633-7533), 종가집(626-9988), 춘향각(633-3302), 청학동(625-0955) 등. 남원의 또 다른 별미는 추어탕이다. 미꾸라지를 통째로 갈아 넣어 걸쭉하게 만든 국물맛이 일품이다. 대부분 이름난 추어탕 전문점이 광한루 인근에 몰려 있다. 남원추어탕의 원조격인 남원새집(063-625-2443)을 비롯, 일성식당(625-5793), 남원추어탕(625-3009), 현식당(626-5163) 등.

●잘 곳 호텔과 콘도가 여럿 있어 숙박여건이 좋은 편이다. 국민호텔(063-636-7114), 남원호텔(626-8551), 구룡관광호텔(636-5733). 한국콘도(632-7400), 하이츠콘도(626-8080), 일성콘도(636-7000), 토비스콘도(636-3663). 장급여관도 시설이 깨끗한 편이다. 로망스(632-2536), 퀸파크(631-2030), 쌍둥이파크장(620-5000).

■ 길에서 띄우는 편지

남원 바래봉은 전국 최대의 철쭉 군락지답게 많은 관광객이 방문합니다. 철쭉이 만개하는 5월 한달은 상춘객이 넘쳐난다는 표현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입니다. 등산을 하면서 맛 보는 철쭉이 어우러지는 풍광은 명불허전입니다. 하지만 바래봉 여행이 그다지 개운하지는 않았습니다.

바래봉 등산로를 한참 오르니 깔끔하게 정리된 길이 나왔습니다. 길을 넓게 내고, 길 중간에 평평한 돌을 깔았습니다. 그냥 보기에도 적지 않은 예산을 들여 다듬은 것 같습니다. 행정 당국에서 여행객의 편의와 미관을 위해 배려한 흔적이 역력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산을 오르기 위해 택한 길은 신작로처럼 잘 닦인 길이 아닙니다. 등산로 가장 자리에 쳐 놓은 목책 너머로 사람 한 명이 겨우 다닐 수 있는 좁은 흙길이었습니다. 돌길이 너무 딱딱해 등산로로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한 까닭입니다. 등산을 즐기는 이유중에는 도시에서는 좀체 구경하기 힘든 흙길을 밟을 수 있다는 게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한참을 오르다 보니 혼자만의 선택이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많은 등산객들이 잘 정리된 돌길을 외면하고 좁은 흙길을 이용하고 있었습니다. 산을 오르는 사람과 하산하는 사람이 부딪혀 난감해 하는 일이 곳곳에서 일어납니다. 참지 못한 한 등산객이 한마디 내뱉습니다. "비싼 돈 들여 왜 이 짓을 하는 지 모르겠다" 고. 지나가던 사람들마다 "맞는 말"이라며 한 마디씩 거듭니다. 여행객이 편하게 등산을 즐길 수 있도록 깔아 놓은 길이 오히려 여행객으로부터 외면 받고 있는 것입니다.

산행을 하다 보면 여행객을 위한다는 명목 아래 등산로를 깎아 계단을 만들기도 하고, 돌길을 내 놓은 곳을 더러 만납니다. 하지만 그 순간 산은 망가지고 맙니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의 바람은 자연을 보는 것입니다. 그도 안 되면 가장 자연에 가까운 산을.

한창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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