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에서 선 수행을 할 때에 가장 ‘홀로’ 된다고 느끼는 시간은 바로 밥 먹을 때다. 물론 다른 이들은 가부좌를 틀고 좌선 할 때 혹은 절을 할 때가 ‘더 홀로’라고 말할지 모르나, 나는 그렇다. 한 방에 몇 십 명이 빼곡이 앉아 밥을 먹는데, 결코 ‘더불어’ 먹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 이상할 정도니까. 그런데 홀로 밥을 먹으며 내 몸 속으로 들어가는 음식 하나하나와 나에게만 집중을 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은 바빠진다. 오물거리는 입, 오이를 아작 씹는 숨결과 호흡, 밥술을 뜨는 손끝을 보면서 내 주제를 또 한 번 파악하게 된다.
유명한 철학가가 "너 자신을 알라"라고 했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너 자신을 알고 싶으면 혼자 밥을 먹어 보아라"라고. 이 때 혼자 먹는 메뉴도 고기나 술 보다는 몸을 가라앉히고 열기를 식혀주는 식재료 위주로 하면 더 좋겠다. 스트레스나 화가 차서 씩씩 댈 때, 외롭고 울적할 때, 내 몸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자신을 다스려 주는 보약이 될 수 있다. 잘 고른 식단을 홀로 먹는 밥상이 종교와 상관없는 좋은 치유법이 될 수 있다.
◆ 들깨 무나물, 깻잎두부부침
예로부터 대가족 단위로 먹는 식사 시간에 익숙한 우리는 혼자 먹는 밥에 대한 거부감 혹은 두려움이 있다. 옛날이야 남자들 일 마치고 돌아오는 시간, 학생들 귀가 시간, 엄마들 장 봐서 오는 시간이 엇비슷했기에 가능했을까. 요즘처럼 각자의 사무가 다양하고 바쁜 세상에는 쉽지 않은 일이다.
가족들과 밥을 먹을 수 없거나 혼자 사는 싱글의 경우, 혼자 밥을 먹는 시나리오는 대충 두 가지 정도로 나뉠 것이다. 대충 차린 밥에 반찬통을 죽 늘어 놓고 TV를 보면서 먹거나 내키지 않는 타인과 약속을 굳이 만들어서 함께 먹는 것 말이다. 이럴 때 맛 난 건강식 한두 개 만들어서 천천히 음미해 가며 먹어보자. 머리가 맑아지고 컨디션이 달라진다.
살짝 볶아서 숨을 죽인 무채에 소금과 들깨 가루로 간을 하면 고소하다. 여기에 으깬 두부를 숙주와 섞어서 소금 간 하고, 깻잎 사이에 넣어 계란 물에 지져내면 무나물에 곁들이기 좋은 맛이 난다. 간이 세지 않은 음식일수록 집중해서 먹어야 그 맛을 느낄 수 있으니 나물 한 젓갈, 밥 한 술 떠먹어 가며 무맛이나 깻잎 속 두부 맛을 음미해야 할 듯. 혼자 밥 먹는 시간이 오히려 타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휴식이 될 수 있다.
◆ 버섯 스파게티
독신자들이 많은 뉴욕에는 ‘혼자 먹기 좋은 곳’ 같은 레스토랑 칼럼이 연재 된다. 바쁜 저녁 시간에 홀대 받기 딱 좋은 ‘홀로 족’들을 타깃으로 잡아 성공하는 식당들이 있을 정도. 서울에서는 아직 독신자 문화가 일반화되지 않아서 바쁜 시간에 홀로 식당에 들면 밥집일 경우, 아저씨들 틈에 끼어 앉게 된다. 레스토랑일 경우에는 "손님, 죄송하지만 예약이 다 차서요" 라고 정중히 문전박대를 당할 수도 있고. 그래서 뉴욕의 경우, 규모가 큰 레스토랑마다 ‘바’ 공간을 잘 갖춘다. 우리는 주로 술 마시는 공간으로 ‘바’를 알고 있지만, 영리한 뉴욕의 레스토랑 주인들이 그 개념을 바꾼 거다. 혼자 들어와서 밥 달라는 손님들이 늘어나니까, 그렇다고 두 명 분의 테이블을 한 사람에게 주기가 아까우니까 말이다. 대신 바에 앉아 시키는 메뉴는 레스토랑의 기존 메뉴보다 조금 싼 편이다. 아무래도 테이블보다는 비좁고 하니까 이래저래 합리적으로 가격을 맞춰 준다는 얘기. 혼자 밥 먹는 이들은 같은 음식 저렴하게 먹으니 좋고, 레스토랑 측은 손님 하나라도 더 받으니 좋다.
혼자 밥 먹는 이들이 많은 도시답게 반 조리 메뉴를 파는 곳도 많다. 미리 조리해 둔 파스타나 볶음밥이나 스튜가 주를 이루고, 가정에서 전자레인지에 데우거나 오븐에서 한 번 더 구워주면 완성 되는 요리들이다. 오늘 소개하는 버섯 크림소스도 미리 만들어서 얼렸다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 먹기 좋은 메뉴이니 참고하자. 잘게 다진 버섯을 크림에 졸이다가 육수와 소금, 후추로 간을 맞추면 끝나는 간단식이다. 필요한 만큼 팬에 녹여 미리 삶아 둔 파스타나 가락국수를 비벼 먹으면 편리하다.
제 방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않는 ‘홀로 족’들이 늘어가 사회적인 병리 현상이 되고 있지만, 홀로 보내는 시간이 너무 없는 생활 방식도 건강에 좋지 않기는 마찬 가지다. 인간은 애초에 타고나는 고유의 성향이 있으나 사회에 섞여 살다 보면 무뎌지기도, 잊어버리기도 한다. 가끔씩은 무리에서 뚝 떨어져서 내가 가는 길이 예전의 내가 원했던 모습인지, 내가 먹는 이것이 내 몸에 잘 맞는 음식인지, 너무 바빠서 빠뜨리고 가는 것은 없는지 집중해 볼 일이다. 이삼일에 한·끼쯤은 온전히 ‘나’만을 위해 식사를 하자. TV를 보면서 나라 걱정도 하지 말고, 옆자리 선배와 부장님 흉도 보지 말고 내 몸과 내 마음을 한 번씩 걱정 해 주자.
푸드채널 '레드 쿡 다이어리' 진행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