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시내의 한 불법 사채업체 비밀사무소를 급습해 거래 장부를 압수한 국세청 직원들은 장부를 들춰보고 혀를 내둘렀다.
금액이 적혀 있어야 할 거래내역 난에 알파벳 문자만 잔뜩 씌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국세청은 결국 외부 전문가의 도움을 얻은 뒤에야 간신히 ‘암호’를 해독할 수 있었다.
국세청은 지난 5년간 1조87억원대의 사채를 월 15~25%의 고금리로 굴리고, 1,058억원의 이자소득을 탈루한 사채업체 전주(錢主) L(52)씨 등 18명을 적발했다고 11일 밝혔다. 국세청에 따르면 L씨는 비밀장부를 작성하면서(사진) ‘상담내용 및 조건’이라는 제목으로 천만원을 기본 단위로 1,000만원은 ‘A’, 2,000만원은 ‘B’(7,000만원은 ‘G’) 등으로 기재하고, ‘+’와 ‘-’ 부호로 액수 단위를 조절했다. 예를 들어 200만원은 ‘B-’, 50억원은 ‘E++’라고 표기했으며 1억500만원은 ‘A+E-’로 기입했다. ‘만남’은 ‘M’, ‘대출기간’은 ‘DG’ 등으로 작성됐다.
L씨는 13명의 속칭 ‘바지사장’(무재산 위장 명의자) 명의로 11개 비밀 사무소를 분리, 운영하면서 전화와 팩스로만 상호 업무를 보도록 하는 등 세무조사에 철저히 대비했다. 당초 국세청은 L씨 명의의 공식적인 사무실이 계속 잠겨 있어 폐업 업체로 오해했다가 ▦3~4일 간격으로 우편물이 수거되는 점 ▦정수기 대여료가 지나치게 많다는 점 등에 착안, 정수기 대여업체를 통해 비밀사무소들을 찾아냈다. 사채업체 직원들은 국세청 직원들이 들이닥치자 서류를 파쇄하고 심지어 입안에 삼키는 등 증거인멸을 시도하기도 했다.
조사 결과 L씨는 시가 400억원 상당의 농지 2만여평을 매입한 뒤 이를 담보로 대출을 받는 등의 방법으로 사채대금을 조달했으며 세무당국에는 소득액을 18억원만 신고한 것으로 나타났다.
국세청은 ▦‘카드깡’ 등을 통해 30억원의 불법 소득을 올린 S(35)씨와 ▦기업체 비자금으로 사채업체를 운영하면서 25억여원을 탈루한 H(46)씨 ▦폭력배를 동원해 "매춘을 해서라도 돈을 갚으라"며 여성 채무자를 협박한 사채업자 L(50)씨 등도 함께 적발해 검찰 등 관계기관에 고발했다.
박진석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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