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조 속의 여자가 일어나는 순간 주요 부위를 뿌연 원이 따라다닌다. 영화에 몰입하던 관객들은 실소를 참지 못하고, 일부는 혀를 차기도 한다. 국내 극장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장면이다. 모자이크(일명 보카시)처리로 잠시 영화 감상에 방해를 받는 것은 그나마 다행. 등급 보류 판정을 받거나 수입추천 심의를 통과하지 못해 영화사가 자발적으로 주요 장면을 삭제해서 ‘2% 부족한 영화’를 보아야 했던 것이 우리의 현실이었다.
하지만 요즘은 몰라보게 달라졌다. 남녀 성기와 음모가 거리낌없이 등장하는 영화들이 무삭제와 무(無)모자이크 처리로 잇달아 개봉하고 있다. 성기와 음모라면 소스라치며 불가 결정을 내렸던 영상물등급위원회(위원장 이경순)의 등급 판정 기준이 예전에 비해 관대해졌기 때문이다.
철옹성 같던 금기의 둑에 균열을 일으킨 작품은 지난해 개봉한 프랑스 카트린 브레이야 감독의 ‘팻 걸’(사진)이다. 여성의 음모가 드러나는 ‘팻 걸’은 재심을 거쳐 가까스로 18세 관람가 판정을 받았다. 이어 가짜지만 남성 성기가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브레이야 감독의 ‘섹스 이즈 코미디’가 첫 심의를 무사 통과하면서 둑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6월 개봉 예정인 세드릭 칸 감독의 ‘권태'는 이런 흐름이 돌이킬 수 없는 대세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준다. 2002년 아예 수입추천 불허 판정을 받아 상영이 원천 봉쇄 되었던 ‘권태'는 지난해 무삭제로 수입 추천을 통과했고 3월 18세 관람가 등급을 받았다.
이들 영화들이 온전하게 개봉할 수 있게 된 데는 1월 영등위 위원의 비위에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난 김수용 전 위원장 덕분이라는 것이 영화계의 중론이다. 1987년 자신의 영화 ‘중광의 허튼 소리’가 난도질 당했던 아픈 기억을 지닌 김 전 위원장은 재임 시절 "주제나 예술적인 면에서 납득할 수준이면 주요 신체 부위가 노출됐더라도 통과가 안될 이유가 없다"며 전향적인 심의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영등위의 심의 벽이 아직도 높고, 형평성을 잃고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충무로의 한 관계자는 "아직도 폭력적인 장면에는 너그러우면서도 신체노출과 성애 묘사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깐깐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불만스럽다"고 말했다.
라제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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