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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 충무공이 부채를 선물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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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窓] 충무공이 부채를 선물한 까닭

입력
2005.05.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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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 무제는 ‘독존유술 파출백가(獨尊儒術 罷黜百家)’라는 정책을 실행해 유교적 교양을 갖춘 관리들이 국정을 담당하도록 기틀을 닦았다. 그 후 중국의 역대 왕조는 이런 기본 틀이 청나라까지 지속됐다. 무제는 유학을 반석 위에 올린 군주로 평가받지만, 실제로는 유학 이외 다양한 학술을 익힌 관리를 임명해 국가를 다스렸다. 무제의 증손인 선제도 유학과 법가의 풍을 적절히 배합, 국력이 최고에 달하게 만들었다. 그의 정치는 대신에겐 엄격한 대신 백성에겐 편안한 것이었다. 그러나 유학을 숭상하던 태자, 바로 훗날의 원제는 늘 부친에 대해 불만이었다. 한서(漢書)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원제는 선제의 태자로 성품이 인자하고 유학을 좋아하였다. 선제가 쓰는 사람에 법가관리가 많았다. 한번은 부황(父皇)을 모시다가 조용히 말했다. "폐하가 형을 집행하는 것이 너무 심합니다. 마땅히 유생을 써야 할 것입니다." 선제가 낯빛을 바꿔 말했다. "한나라 황실은 스스로의 제도가 있으니 본래 패도(覇道)와 왕도(王道)를 섞어 사용하였다. 어찌 덕교(德敎)에만 의지하여 주나라의 정치를 하겠느냐! 또 속된 유학자들은 옛날을 좋다 하고 현대를 깎아내려 관념과 현실을 구분 못하고 어디에 요점이 있는지 모르는 무리가 많다. 그들에게 정치를 맡길 수 있겠느냐!" 그리고 탄식하며 말하기를 "우리 한나라를 어지럽힐 자는 태자로다!" 하였다.’

이상(理想)과 운용의 두 측면을 모두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 것은 지금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이상은 문장과 언설에 나타나지만 운용은 숨겨져 있어 가끔은 모르는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익의 성호사설에 실려 있는 충무공의 일화도 비슷한 예인 것 같다. ‘충무공은 임진왜란을 당하여 왜적을 물리치는 와중에도 틈만 나면 부채 따위를 만들어 두루 조정의 고관들에게 선물하여 마침내 중흥의 공을 이루었으니, 이는 천고에까지 지사들의 눈물을 떨어뜨리게 하는 것이다.’

충무공은 "다만 방해를 할까 두려워서이지 이익을 구하려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힌다. 그리고 "수없이 생각하여 일을 시행할 방침이 완전히 갖추어져야 나아가는 것이니, 그렇지 않으면 반드시 소인들에게 방해를 받아 자기의 포부를 펼 수가 없기 때문이다"라고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누군들 이 이야기에 가슴 뭉클하지 않겠는가. 개인이든 집단이든 이상은 서로 엇비슷할 것이나 그것을 어떻게 실천하고 지켜내는가 하는 방법에서는 천양지차일 것이다.

박성진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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